[문학예술]쿤데라 “소설은 가려진 세상을 여는 것”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밀란 쿤데라 커튼/밀란 쿤데라 지음·박성창 옮김/236쪽·1만3000원·민음사

‘세르반테스가 새로운 소설 기법을 개척했던 것은 바로 선(先)해석의 커튼을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이 파괴적 행위는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설이라면 그 어느 것에서나 반영되고 이어진다. 이것은 소설이란 예술임을 증명하는 표시니까.’

밀란 쿤데라(사진)가 5년 만에 소설에 관한 신작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에세이집으로는 두 번째인 이번 작품은 주로 자신의 소설 작법을 다루었던 ‘소설의 기술’과는 달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예술성과 직능, 소설가의 역할(혹은 사명), 미학에 대해 생각을 풀어놓는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은 ‘연속성의 의식, 세계문학,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 소설가란 무엇인가, 미학과 삶, 찢어진 커튼, 소설·기억·망각’이란 카테고리로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론을 담아낸다.

이 책에서 쿤데라가 말하는 ‘커튼’은 전설들로 짜인 마법의 커튼이며 진짜 세상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존재다. 소설은 이 커튼을 찢어 세상을 활짝 열어 보이는 것이며,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자들이 소설가라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배관공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존재지만, 일부러 덧없고, 진부하고, 판에 박힌, 그래서 무익하고, 결국 성가시고, 마침내 해를 미치는 책들을 만들어 내는 평범한 소설가들은 경멸당해 마땅한 존재’라고 말한다.

소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미학과 소설사에 있었던 혁명적인 서사 실험 등에 대한 통찰뿐 아니라 세르반테스, 플로베르, 카프카, 프루스트, 오에 겐자부로 등의 명작을 밀란 쿤데라의 안목으로 재감상할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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