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9년 만화 ‘배트맨’ 출시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대부호였던 부모는 극장에서 걸어 나오다 악당에게 살해됐다. 이 장면을 목격한 8세의 남자아이는 평생 악과 맞서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성인이 된 그는 박쥐 모양의 옷을 걸치고 밤거리에 나섰다. “악당들은 미신을 믿는 겁 많은 존재야. 그러니까 내 모습은 그들의 심장에 공포와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해.” 고담시(市)의 자경대원 배트맨은 이렇게 탄생했다.

본명은 브루스 웨인. 13세기 스코틀랜드의 민족 지도자 로버트 브루스와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 앤서니 웨인에서 따온 이름이다. 역시 부자면서 악과 맞서는 ‘섀도’의 음침하고 이중적인 성격, 셜록 홈스의 명석한 두뇌와 추리력, ‘조로’의 마스크가 뒤섞인 복잡한 캐릭터다.

1939년 5월 27일 발간된 미국의 만화잡지 디텍티브 코믹스 27호에 회색 옷, 검은색 두건과 망토 차림으로 처음 등장했다. 만화가 밥 캐인이 스토리작가 빌 핑거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면 빨간 일체형 타이츠를 입고 등에 박쥐 날개를 붙인 채 대중 앞에 설 뻔했다.

DC코믹스사(社)의 다른 계열잡지를 통해 1932년 데뷔한 선배 슈퍼맨과는 혈통부터 달랐다. 슈퍼맨이 클립톤 행성 출신의 타고난 강골(强骨)이라면 그는 순수한 지구인이자 노력형 영웅이다. 무술수행을 했지만 박쥐 옷, 배트모빌 같은 첨단장비가 없으면 강한 악당을 상대하기는 역부족. 혼자 일하는 슈퍼맨과 달리 짝패인 로빈, 집사 알프레드의 조력도 필요했다.

1950년대 들어 폭력만화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나아가 로빈과의 관계까지 의심받았다. 1956년 배트우먼, 1961년 배트걸이 등장한 이유도 성(性) 정체성에 대한 우려를 털어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1966년 시작된 TV 시리즈는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인기가 하락할 때면 ‘끼워팔기’ 출연도 감수해야 했다. 1970, 80년대에는 원더우먼 슈퍼맨 아쿠아맨 프래시 호크걸 등과 함께 ‘저스티스 리그(한국명 슈퍼 특공대)’에 참가해 지구의 적과 맞섰다.

20세기로 끝날 뻔했던 명성이 21세기까지 이어진 것은 팀 버튼이 감독한 배트맨 1(1989년), 배트맨 2(1992년) 이후 계속된 영화들의 흥행 성공 덕분이었다. 올해 8월 초에는 ‘다크나이트’라는 이름의 새 배트맨 영화가 개봉된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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