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5년 유길준 ‘서유견문’ 간행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지구 세계.’

요즘이야 세계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지만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빗장을 굳게 걸었던 120여 년 전 이미 이런 표현을 쓴 조선의 사상가가 있다. 개화기 대표적 정치가이자 조선 최초의 국비 유학생 유길준(1856∼1914)이었다.

이 표현은 유길준이 1895년 4월 1일 간행한 ‘서유견문’에 나온다. ‘서유견문’은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벨기에 등 서양의 근대 문명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모두 20편에 걸친 글에서 세계 지리, 나라의 권리, 국민 교육, 정부제도, 교육, 서양 학문의 내력, 문화와 풍속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유길준은 1881년 신사유람단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883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공부했고, 그때 유럽의 여러 나라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그는 1885년 귀국하자마자 갑신정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갑신정변의 주모자인 김옥균 박영효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체포돼 7년간 연금 상태에 묶였다. ‘서유견문’은 이때 완성됐다.

‘서유견문’은 단순한 서양 기행문이 아니다. 유길준은 보고 들은 서양의 근대 문물을 어떻게 받아들여 조선의 근대화를 완성할지 고민했다.

그는 당시 조선의 발을 묶었던 중국과의 조공관계를 대체할 근대적 국가 관계를 꿈꿨다. 그는 ‘서유견문’에서 “커다란 나라도 한 나라이고 작은 나라도 한 나라다. 한 나라가 나라 되는 권리는 피차 동등하고 지위도 털끝만 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조선이 작고 약해 중국에 조공을 바치더라도 근대적 정치체제에 따르면 세계 속 여러 주권 독립국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길준은 이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중립론을 내세웠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사이에서 중립을 인정받으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유길준은 서구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의 발전을 꾀하자는 생각으로 ‘서유견문’을 썼지만 무조건 나라를 여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 있는 개방을 강조했다. 다음의 말은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하다.

“개화를 주장하여 힘써 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요, 개화를 선망하여 배우고 취하기를 즐겨하는 자는 개화의 빈객이요, 개화를 두려워하되 부득이 이에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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