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 마지막 굿당 무너진다

  • 입력 2007년 11월 1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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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당에 남아 있는 희귀 무신도 ‘삼불사할머니’. 금성당에는 이처럼 희귀 무신도와 제기 등 나라굿을 올리는 데 쓰인 역사적 문화유산이 다수 남아 있다. 윤완준 기자
금성당에 남아 있는 희귀 무신도 ‘삼불사할머니’. 금성당에는 이처럼 희귀 무신도와 제기 등 나라굿을 올리는 데 쓰인 역사적 문화유산이 다수 남아 있다. 윤완준 기자
옛 모습을 간직한 마지막 남은 조선 왕실의 굿당 금성당이 주변지역 재개발로 허물어지고 있다.
옛 모습을 간직한 마지막 남은 조선 왕실의 굿당 금성당이 주변지역 재개발로 허물어지고 있다.
《200년 전 모습을 간직한 마지막 남은 조선 왕실의 굿당 금성당(錦城堂)이 문화재청의 보존 복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뉴타운 개발 현장에 방치돼 훼손 위기에 처했다.

무속연구 권위자인 양종승(문화재전문위원)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12일 “은평뉴타운 개발 시행자인 공기업 SH공사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금성당을 아파트 건설 현장 한가운데 방치한 채 보존 복원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굿당과 내부 유물이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성당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실패해 처형당한 뒤 무속신앙에서 신격화된 금성대군을 주신으로 모신 나라굿당. 전문가들은 금성당이 나라굿을 거행한 굿당 중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굿당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은평뉴타운 개발로 ‘금성당’ 훼손 위기… 보존 조치 늑장

금성당은 ‘ㄱ’ 자 모양의 정면 5칸짜리 19세기 목조 건축물. 보통 정면 1칸 크기인 마을굿당에 비해 건축물과 섬돌 규모가 커 나라굿당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왕실의 큰 행사 때 사용한 물품 목록을 적은 ‘궁중발기(宮中撥記)’에 왕실이 금성당에 치성 물품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굿당 안의 제기(祭器)는 19세기 관요(국가 운영 가마 터) 백자이며 ‘삼불사할머니’ 등 희귀 무신도가 다수 남아 있어 문화유산 가치가 높다.


촬영: 윤완준 기자

지난해 초 SH공사는 뉴타운 개발 계획 수정에 따른 경제 손실을 이유로 금성당 이전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5월 금성당을 조사한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에 남은 무속신앙의 대표적 유적이고 19세기 건축물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북한산 지맥이 있는 터 자체의 역사적 의미도 크다”며 본래 자리에 보존 복원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SH공사는 ‘금성당 현상 보존 계획’을 마련했으나 올해 초 문화재청에 “금성당 이전을 적극 검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일 둘러본 금성당은 D아파트 건설 현장 한가운데 임시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나 공사 진동과 먼지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올해 초 굿당 안 유물을 실사하겠다던 SH공사의 설명과 달리 제기와 위패 등이 굿당 안에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져 있었다.

지난해 9월 시작됐어야 할 금성당 보수 공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굿당 옆에서 굴착기로 땅을 파는 등 이대로 뒀다간 원형 복원 전에 굿당이 무너질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장 건설 관계자들은 “(SH공사에서) 구체적인 보존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답답하다”며 “빨리 금성당을 현상 복원하는 게 아파트 공사 진전에도 좋다”고 말했다.

SH공사 관계자는 “절차가 늦어졌지만 그쪽(보존 복원)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 계획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SH공사의 태도는 보존 복원을 위한 준비로 볼 수 없다”며 “하루빨리 유물을 실사해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건축물의 정밀 실측 뒤 현상 복원 전까지 덧집 설치 등 보존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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