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연구 권위자인 양종승(문화재전문위원)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12일 “은평뉴타운 개발 시행자인 공기업 SH공사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금성당을 아파트 건설 현장 한가운데 방치한 채 보존 복원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굿당과 내부 유물이 급속도로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성당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실패해 처형당한 뒤 무속신앙에서 신격화된 금성대군을 주신으로 모신 나라굿당. 전문가들은 금성당이 나라굿을 거행한 굿당 중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굿당이라고 설명한다.》
서울 은평뉴타운 개발로 ‘금성당’ 훼손 위기… 보존 조치 늑장
금성당은 ‘ㄱ’ 자 모양의 정면 5칸짜리 19세기 목조 건축물. 보통 정면 1칸 크기인 마을굿당에 비해 건축물과 섬돌 규모가 커 나라굿당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왕실의 큰 행사 때 사용한 물품 목록을 적은 ‘궁중발기(宮中撥記)’에 왕실이 금성당에 치성 물품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굿당 안의 제기(祭器)는 19세기 관요(국가 운영 가마 터) 백자이며 ‘삼불사할머니’ 등 희귀 무신도가 다수 남아 있어 문화유산 가치가 높다.
지난해 초 SH공사는 뉴타운 개발 계획 수정에 따른 경제 손실을 이유로 금성당 이전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5월 금성당을 조사한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에 남은 무속신앙의 대표적 유적이고 19세기 건축물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북한산 지맥이 있는 터 자체의 역사적 의미도 크다”며 본래 자리에 보존 복원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SH공사는 ‘금성당 현상 보존 계획’을 마련했으나 올해 초 문화재청에 “금성당 이전을 적극 검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됐어야 할 금성당 보수 공사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굿당 옆에서 굴착기로 땅을 파는 등 이대로 뒀다간 원형 복원 전에 굿당이 무너질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장 건설 관계자들은 “(SH공사에서) 구체적인 보존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답답하다”며 “빨리 금성당을 현상 복원하는 게 아파트 공사 진전에도 좋다”고 말했다.
SH공사 관계자는 “절차가 늦어졌지만 그쪽(보존 복원)으로 가게 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 계획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SH공사의 태도는 보존 복원을 위한 준비로 볼 수 없다”며 “하루빨리 유물을 실사해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건축물의 정밀 실측 뒤 현상 복원 전까지 덧집 설치 등 보존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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