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 父女를 따라가 보자,古典과 ‘가족’을 찾으리니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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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화 관동대 교수(가운데)와 딸 다훈(오른쪽) 다영 양. 정 교수는 두 딸이 어렸을 때부터 책과 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여 줬다. 사진 제공 휴머니스트
정인화 관동대 교수(가운데)와 딸 다훈(오른쪽) 다영 양. 정 교수는 두 딸이 어렸을 때부터 책과 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여 줬다. 사진 제공 휴머니스트
◇아빠와 딸이 여행을 하며 古典을 이야기하다/정인화 정다훈 정다영 지음/284쪽·1만3000원·휴머니스트

아버지와 두 딸이 있다. 평범한 ‘보통 아버지’지만 자식을 키우는 원칙이 하나 있다. “여행이란 직접 체험과 독서란 간접 체험을 통한 깨달음”이다. 막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5대양 6대주로 셋이 함께 혹은 각자 여행했다. 그리고 좋은 책을 권했다.

50대가 된 아버지, 그리고 20대 대학(원)생이 된 딸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동안 읽은 책과 여행이 무궁무진한 소재의 원천이다. 고대 그리스신화부터 ‘어린 왕자’와 ‘이기적 유전자’까지. 다양한 고전을 넘나들며 세상사는 법을 묻고 답한다.

부녀의 대화는 편안하다. 책 역시 시종일관 대화체다. 관동대 교양과 교수인 아버지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라도 터득한 걸까. 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한다. 두 딸 역시 아버지에 대한 불만부터 남자친구 얘기까지 거침이 없다. 웃고 떠들고 얘기를 즐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가볍지는 않다. 그리스신화와 삼국유사를 논하며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나 한국인의 원형을 논한다. 이광수의 ‘무정’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에선 운명론과 인간의 의지 사이에 야기되는 복잡한 함수관계에 머리를 싸매기도 한다.

소재는 고전이나 풀어가는 대화는 결코 구닥다리가 아니다. 주자의 ‘소학’을 토론한다고 해서 전통이 중요하다느니 식의 뻔한 결론이 등장하진 않는다. 소론이 인간관계와 행동거지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전제 아래 인간의 이중성과 가치판단의 어려움을 따져본다. 일상의 소중함과 작은 것의 귀함이라는 보편적이나 타당한 결론을 이끈다.

요즘 청소년들이 관심 가질 만한 시대적 궁금증도 챙긴다. ‘신라시대 최초의 세계시민’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통해 명품에 열광하고 우리 것을 얕잡아보는 세태를 비판한다. 한류가 지니는 사회적 문화적 함의를 분석하고 서구 중심적 가치관의 탈피를 시도한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편에서도 이성애에만 기울지 않고 동성애도 편견 없이 다룬다.

글은 잘 읽힌다. 그러나 여백은 쉽질 않다. 한 단원이 넘어갈 때마다 생각할 건 자꾸 쌓인다. 청소년에게 독서와 사색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지만 어른에게도 효과는 충분하다. 20대 초반 학생보다 고전 읽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 땐 부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이 전하는 진짜 핵심은 고전 습득에 있지 않다. “부녀가 함께 대화하고 함께 성숙하고, 그래서 각자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일”이 뭣보다 소중하다. 가족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것임을. 책을 읽은 10대들이 “우리 가족은 왜 그러지 못할까”라고 서운해하지나 말았으면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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