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전막후]세종문화회관에 특설 스크린이?

  • 입력 2007년 11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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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머리만 보일 뿐 다리는 너무 짧아 보인다.” “아찔한 경사 때문에 멀미가 날 것 같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객석 3층은 국내 공연장 중에서 가장 악명이 높다. 무대에서 3층 마지막 객석과의 시선 거리는 무려 55m나 된다. 무대에 선 배우들의 얼굴이 손톱만 하게 보이고, 마이크를 쓰지 않은 클래식 공연에선 음향이 모기 소리만큼 작게 들린다. 마치 다락방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세종문화회관이 3층 객석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300인치의 대형 스크린(사진) 한 대를 7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것이다. 1∼4일 공연되는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3층에서 관람하는 관객들은 무대 외에 카메라 6대가 잡아내는 배우들의 얼굴 표정을 클로즈업한 영상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된다.

1978년 3822석의 다목적 회의장으로 개관한 세종문화회관은 2004년 좌석 800석을 줄이는 등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관했다. 그러나 1000석이 넘는 3층 좌석의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스크린 설치 아이디어를 낸 박세원 서울시오페라단장은 “3층 티켓 가격은 5000∼1만 원대로 저렴해 학생 단체 관객이 주로 찾지만 거리가 멀어 작품 내용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며 “교육적 차원에서 청소년들에게 무대를 더 잘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형 스크린은 요즘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야외 오페라, 클래식, 대중음악 공연 등에 자주 등장하는 필수품. 그러나 실내 공연장의 스크린 설치는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라 공연계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오페라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1층 객석의자에 설치된 자막용 소형 액정표시장치(LCD) 화면도 밝은 빛 때문에 공연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이 있었던 만큼 300인치 초대형 스크린은 더 큰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스크린은 오페라 가수들에게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서는 짙은 분장과 조명 때문에 외모나 세밀한 얼굴 연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대형 스크린 설치로 성악가들은 공연 내내 카메라에 비치는 표정 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성악가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릴 듯하다.

세계적인 연출가 피에르 루이지 피치 씨는 올봄 방한했을 때 “연출가는 무대 전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달리 영상은 카메라 감독의 시선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예술”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관객의 처지에서 본다면 가수들을 클로즈업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며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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