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내 안의 황무지·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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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황무지·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윤영수 지음/256쪽(내 안의…), 284쪽(내 여자친구…)·세트 1만6000원·민음사

아무리 쿨한 세상이라도 끈적끈적할 수밖에 없는 무엇. 윤영수(55·사진) 씨는 그 무엇에 천착해 온 작가다. 가령 ‘착한 사람 문성현’에서 시어머니의 구박 속에서도 애틋함을 찾아내는 며느리나, 자신이 돌봐야 하는 장애인에 대한 애증을 극단적으로 쏟아내는 예산댁 같은 인물이 그랬다.

윤영수 씨의 새 작품집은 일단 형식이 독특하다. 두 권으로 나누어 각각 단편 5편을 묶었다. 무게감을 줄이려고 분책한 게 아니다. ‘내 안의 황무지’는 진중하고 묵직한 이야기, ‘내 여자친구의 귀여운 연애’는 그보다 가뿐한 내용의 이야기 모음이다.

가령 ‘내 여자친구의…’의 표제작은 서른여덟 노처녀 양미의 화려한 변신 얘기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느라 제 몸 챙길 겨를이 없었던 양미가 어느 날 갑자기 화장을 하고 머리 모양을 바꾸자, 주변에선 연애하는 게 아니냐며 입방아를 찧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 양미가 스스로를 위해서 돈을 쓰자 양미한테 손 벌리기만 하던 가족은 슬금슬금 양미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말없이 희생할 때 한없이 짓눌리고, 뻔뻔하게 제 것 챙길 때 대접받는 이 현실!

작가는 착하게만 살 수 없는 인생, 위선과 거짓말이 위로가 되는 인생을 짐짓 명랑하게 전한다. 그렇지만 그 익살과 명랑이 직설적인 표현보다도 쓸쓸하게 느껴진다.

‘내 안의 황무지’ 속 이야기들은 그늘져 있다. 사고로 아이가 죽은 뒤 화자는 소설책 100권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아침마다 출근한다며 나가지만 실은 회사를 그만둔 지 오래다. 소설을 읽다 보니 화자는 사람들의 등판에서 이미지를 보게 되고, 그 이미지가 그들의 머릿속 생각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의처증이 있는 남편에게 시달리는 아내의 이야기인 단편 ‘적도 부근’ 등 ‘내 안의…’의 인물들은 내면의 상처를 풀어내지 못하고 삭이는 사람들이다.

무게감은 다르더라도 두 소설집의 이야기는 모두 매끈한 현대사회를 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끈끈한 관계와 상처에 매인 사람들의 초상이다. 윤영수 씨는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오래 매달려온 주제를 전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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