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변하잖아요…네 번째 사랑이야기 ‘행복’의 허진호 감독

  • 입력 2007년 9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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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가 다시 사랑을 말한다.

한국 멜로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봄날은 간다’ ‘외출’을 통해 사랑의 여러 단면을 보여 준 허진호(44) 감독이 이번에 풀어 놓는 얘기는 현실적이고 잔인한 사랑, 영화 ‘행복’(10월 3일 개봉)이다.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자유롭게 살던 영수(황정민)는 가게가 망하고 애인과 헤어진 뒤 간경변까지 앓게 되면서 시골 요양원으로 내려간다. 거기서 만난 중증 폐질환 환자 은희(임수정)가 그에게 다가오고, 둘은 요양원을 나와 같이 산다. 그러나 1년 뒤 건강을 되찾은 영수에게 서울에서 옛 애인 수연(공효진)이 찾아오고, 영수는 은희가 부담스러워진다.

“너 없으면 못 살겠다”가 “네가 좀 떠나 줘”로 바뀌고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반응이 나오는,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상황. 이 영화의 광고 카피는 ‘변치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허 감독을 16일 시사회 이후 만났다.

―왜 아픈 사람들의 사랑인가.

“통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진 것 없는 아픈 사람들이 외딴 곳에 살면서 사랑을 하는 이야기. ‘지구상에 딱 2명만 남아 있는 느낌’이면 행복하지 않을까. 도시에서는 사랑하는 데 조건이 많다. 가족관계나 학력이나 건강이나…. 그런 것이 다 없을 때 완전성을 가진 사랑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안 봤을 때 두 배우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주변에서 삼촌과 조카 같다며 걱정들을 했다. 그런데 극중에선 처음 만날 때부터 연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영화 속에선 두 사람이 아주 다른 사람들이라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은희는 사랑의 완전성을 믿는 사람이고 영수는 ‘배’ 같은 사람이고.”

―영화의 여주인공이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 간다(‘8월…’에서 다림(심은하)은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지만 ‘봄날…’의 은수(이영애)는 ‘라면 먹고 갈래요?’라며 은유적으로 유혹하더니 ‘외출’의 서영(손예진)은 ‘우리…, 사귈래요?’라고, ‘행복’의 은희는 “우리 같이 살래요?”라고 한다).

“은희란 인물이 여성스럽고 상투적인 인물 같지만 그 안에 다른 면, 적극적인 면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잃을 것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상업영화 감독보다는 작가주의 이미지에 가깝지만 항상 톱스타와 작업한다.

“나는 상업영화 감독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고민하지 않으려면 자본에서 자유로워야 하는데 그렇진 않으니까. 그러나 만약 내 영화에 작가주의적인 면이 있다면 스타들이 출연함으로써 조금 더 대중성을 얻게 된다. 예산을 낮추고 더 새로운 얘기를 한다면 신인들과도 할 수 있다. 스타 캐스팅은 나도 힘들다. 여태까진 운이 좋았다.”

―황정민과 임수정을 각각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와 작업한 남자 배우들(한석규 유지태 배용준)이 좀 정적인데, 황정민은 매우 동적이다. 별명이 황 조감독이다. 소품을 하도 잘 챙겨서. 임수정은 깊이가 있고 당차다.”

―왜 ‘사랑’을 그렇게 사랑하나.

“내가 장르적인 얘기를 잘 못한다. 물론 멜로도 장르지만 액션이나 공포는 현실을 떠나야 하는데 나는 항상 주변에서 있을 법한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 한다.”

―‘봄날…’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했는데 다른 영화가 그 대사를 패러디해 “사랑이 아니니까 변하지”라고 했다. 여기선 사랑인데 변한 건가, 사랑이 아닌 건가.

“결과론적인 얘기다. 변했어도 사랑이다. 분명히 존재했었고, 변했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슬픈데, 제목은 왜 ‘행복’인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돈 건강 쾌락 같은 게 행복인지, 그럼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건지. 두 사람이 사랑했던 순간이 행복인지….”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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