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7년 고상돈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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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를 오른 우리의 이야기는 옛이야기가 아니다. 에베레스트는 어제나 오늘이나 다름없다. 에베레스트는 단순히 눈과 얼음과 바위산이 아니라 상징이자 비유이며 궁극의 목표다.”―‘세계의 지붕에 첫발을 내딛다’(정해왕 지음·2005년) 중에서

1977년 9월 15일 오전 5시 반. 마지막 베이스캠프(8500m)를 떠나기 전. 온도계 유리가 쩍 하고 깨졌다. ‘불길하다.’ 나쁜 생각을 애써 억누르며 고상돈 대원은 캠프를 출발했다.

엿새 전 박상렬 대원이 정상(8850m)을 100m 남겨 두고 악천후와 산소 부족으로 포기했다.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고 씨는 쉬지 않고 나아갔다. “하아, 하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오전 9시 반. 남봉(8763m)에 올랐다. 산소통을 바꿨다. 힐러리스텝(정상 직전의 가파른 빙벽)이 남았다. 수많은 도전자가 이곳서 목숨을 잃었다.

절벽에 쇠말뚝을 박아 밧줄을 고정시켰다. 무의식적으로 앞만 향해 갔다. 하얀 능선 위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따르던 셰르파(길잡이)가 외쳤다. “정상이다!”

고 씨는 태극기를 들었다. 눈물이 났다. “만세! 만세!” 낮 12시 50분이었다.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정상입니다.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유명한 외침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1971년 네팔 외교부에 에베레스트 입산 허가 신청서를 낸 지 6년 만이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정상은 이날 처음으로 한국인의 발걸음을 허락했다. 영국 미국 중국 등에 이어 국가로는 세계 8번째였다.

이날 정상 등정은 한국 산악인에게 크나큰 희망의 영감을 줬다.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씨의 꿈도 이때 시작됐다. 올해 초까지 640여 명의 한국인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해 93명이 정상을 밟았다.

그러나 희생도 없지 않았다. 30년간 산악인 8명이 에베레스트 등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고 씨 역시 2년 뒤인 1979년 5월 미국 알래스카 매킨리 봉(6194m) 정상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영원히 산에 잠들고 말았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한 살이었다.

그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설산을 오를까. 돈? 명예? “숱한 도전에서 진정 두려워한 것은 매서운 추위, 눈사태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더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감이 밀려온다.” 박영석 씨의 말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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