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5년 립켄, 2131경기 연속 출장 기록

  • 입력 2007년 9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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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6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전용구장인 캠던 야즈를 가득 메운 5만여 명의 관중과 600여 명의 기자들은 숨죽인 채 영웅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렸다.

임시 좌석은 수천 달러를 호가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도 관중석에 모습을 드러냈다.

4회말 ‘철인’ 칼 립켄 주니어가 타석에 들어서자 그 열기는 한껏 고조됐다. 립켄이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고 타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직선으로 날아가 가뿐히 왼쪽 펜스를 넘어갔다.

5회가 끝나 이 경기가 공식경기로 인정되자 관중은 일제히 일어나 열렬히 환호했다. 담장 밖 건물 위에는 ‘2131’이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서서히 내려왔다.

2131경기 연속 출장. ‘철마’ 루 게릭(뉴욕 양키스) 이후 56년간 깨지지 않았던, 앞으로도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라던 기록을 립켄이 깬 것이다.

13년간 성적이 부진하지도 않고 사고도 없어야 가능한 기록. 그는 무릎이 뒤틀리고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묵묵히 팀을 위해 뛰었다.

겸손한 립켄이 관중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돌아오자 팀 동료들이 그를 관중석 가까이 끌어냈다. 그는 팬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손을 마주치며 야구장을 돌았다. 기립박수는 22분간 이어졌다.

립켄은 그 후 3년간 연속출장 기록을 501경기나 늘렸다. 1982년 5월 30일부터 1998년 9월 21일까지 모두 2632경기에 출장하면서 7회 이전에 교체된 것은 단 4번이었다.

그는 통산 3184개의 안타와 431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0년 연속 20개 이상의 홈런과 20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 그는 볼티모어에서만 20년을 보내고 19년간 매년 100안타 이상을 치면서도 다른 선수와 팬들에게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아 늘 존경을 받았다.

마지막 시즌인 2001년 올스타전에서 박찬호 선수를 상대로 ‘고별홈런’을 쳐 MVP에 오른 그는 2007년 역대 3위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는 기록 연장에 연연하지 않았다.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아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1998년 볼티모어의 마지막 홈경기가 열리기 직전 그는 감독을 찾아가 연속 출장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연속출장 기록이 더는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

그는 고별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팬들이 저를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저는 꿈을 위해 살았기에 이 모든 일을 이뤘습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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