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따라 세계일주]<7>남아공 아트 페스티벌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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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그레이엄스타운 아트 페스티벌’. 10일간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2800여 회 펼쳐진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그레이엄스타운 아트 페스티벌’. 10일간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2800여 회 펼쳐진다. 사진 제공 유경숙 씨
아프리카를 두드리는 초원의 북소리

《공연 예술 축제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는 영국의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어딜까. 프랑스의 아비뇽 연극 축제? 캐나다의 몬트리올 아트마켓? 아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소도시에서 펼쳐지는 ‘그레이엄스타운 아트 페스티벌’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연극을 중심으로 한 570여 편의 공연이 10일 동안 모두 2800여 회 펼쳐진다.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의 공연 축제. 그것도 시골 도시의 이름을 딴 문화 축제라고 하기에 기꺼이 방문하기로 했다.

그레이엄스타운 공연 축제는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유명 공연 축제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33년째 명맥을 이어오며 아프리카만의 오묘한 맛이 가득 담겨 있었다.》

○ 10일간 2800여 회 공연… 맛보기 무료공연 많아 볼거리 풍성

남아공의 경제 중심지인 조버그(요하네스버그의 애칭)로부터 15시간 떨어져 있지만, 이 축제 때문에 그레이엄스타운으로 가는 모든 교통편이 동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케이프타운까지 멀리 돌아 28시간을 버스로 달려갔다. 발을 들여놓자마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지역이었지만, 아프리카 최대 공연 축제가 이런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이유를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시내 가운데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부터 메인 거리인 하이 스트리트, 아프리카에서도 문학과 예술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로즈 대학의 초원 같은 캠퍼스까지 도시 곳곳에서 댄스와 음악 소리, 아프리카의 북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루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첫날 오프닝 무대를 보진 못했지만, 둘째 셋째날까지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짧게 묶어 보여 주는 무료 프로그램이 많아 주머니가 가벼운 현지인들에게도 반응이 좋았다.

열흘간 모두 24편의 연극과 거리 퍼포먼스, 현대무용, 클래식, 아프리카 전통춤을 봤는데, 여기저기 임시로 만들어진 공연장을 찾아다니는 맛이 쏠쏠했다. 무료 공연부터 우리 돈으로 3000∼1만5000원에 이르는 저렴한 가격의 공연 티켓을 고르고, 미리 본 여행객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재미는 또 다른 축제의 맛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5분 간격으로 곳곳에서 공연이 열렸는데, 인기 무대는 자정 무렵에 열리기도 했다. 축제 프로그램 북도 시간과 장르별로 공연장은 물론 주차장이 있는지까지 보기 쉽게 돼 있어 관광객들은 ‘한 손엔 물! 한 손엔 프로그램 북’의 자세로 다니면 됐다. 그러다 보니 축제를 찾은 여행객들끼리 은연중 일체감이 형성된 듯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자연스럽게 손 인사를 나누곤 했다.

인기작이었던 연극 ‘드럼소녀의 양철북 이야기’는 연일 매진 기록을 세웠다. 공연장은 그레이엄스타운의 고등학교 내 허름한 창고를 임시로 개조한 것이었는데, 한국의 LG 냉장고 포장 박스로 창문을 가린 게 너무 정겨워 웃음이 났다. 이 작품은 20대 초반 흑인 여배우가 출연하는 1인극인데, 어두운 방에 갇힌 흑인 소녀가 물받이 양철통에 빗물 떨어지는 영롱한 소리와 배급용 숟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기쁨 슬픔 번뇌를 표현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낮 12시, 신선한 아프리카산 오렌지 주스와 샌드위치를 사 들고 그레이엄스타운 프린지 페스티벌 참가작이자 청소년 연극인 ‘샤크’를 보러 갔다. 무대는 잔디밭, 객석은 천 두 장을 잔디밭에 깔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관객들은 공연 20분 전부터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깔아 놓은 천 위에 삼삼오오 눕기 시작했다. 따뜻한 남아프리카의 겨울 햇살 아래 펼쳐진 흑인 소년들의 연극은 비록 수준은 높지 않았으나, 관객들을 해바라기처럼 웃게 만들었다.

○ 공연장 전문 택시 타고 이동… 거리 공연도 높은 수준 자랑

또 다른 재미는 거리에 있었다. 공연장을 도는 택시 ‘옐로호퍼’로 우리 돈 500원에 공연장에서 다음 공연장으로 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축제 기간에는 앵벌이 꼬마들도 초콜릿색 예술가가 되었다. 거리에서 동냥을 하던 이들이 남루하지만 색색이 들어간 의상을 골라 입고 얼굴엔 하얀색 분칠을 하고 거리에서 간단한 마임을 선보였다. 그 마임이 귀여워 동전을 줬더니 태엽 인형처럼 춤을 추며 내 주위를 빙그르르 돌기도 했다. 사랑스러운 앵벌이였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작품을 찾았으나 한 편도 없었다. 이 축제의 마케팅을 맡고 있는 질리 함프힐 씨는 미국 멕시코 영국 인도 프랑스 등 여러 곳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매년 참가하는데, 먼 거리 때문인지 아시아 작품은 거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는 한국 작품이 14개 참가한다. 에든버러 축제를 통해 해외 진출의 계기를 마련했던 사례는 논버벌 퍼포먼스 ‘난타’와 최근 인기를 구가하는 무술 퍼포먼스 ‘점프’이다. 이 밖에 매년 7∼9개의 한국 작품이 에든버러를 찾는다. 이쯤되면 에든버러는 경쟁작들이 넘치는 견본 시장임과 동시에 일부의 수작만 살아남는 전형적인 공연 레드오션이 아닐까.

축제 기간 내내 인파에 휩쓸려 공연장을 다니면서 아시아 작품이 한 편도 없는 이곳에 한국 작품이 온다면 어렵지 않게 주목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여행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기회가 있음을, 에든버러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유경숙 공연기획자 pmiki1220@hotmail.com

▼동아프리카 최대축제 잔지바르 페스티벌▼

‘하쿠나 마타타∼!’

아프리카에 와서 뮤지컬 ‘라이언킹’을 또 봤느냐고? 아니다. 동아프리카 최대 아트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그레이엄스타운 아트 페스티벌과 거의 동시에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공연 축제가 열린다기에 남은 여행을 포기하고 단숨에 탄자니아로 날아왔는데, 공항에 내리자마자 들은 첫마디가 바로 하쿠나 마타타였다. 뮤지컬에서 귀여운 멧돼지 품바가 방귀 뀌며 부르짖던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다 잘될 거야)’가 일부 동아프리카 국가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라는 사실을 나는 이곳에 와 처음 알았다. 잔뜩 신이 난 데다, 얼떨결에 두 개의 아프리카 공연 축제를 볼 수 있게 되어 공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축제는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채비를 하고 축제가 열리는 잔지바르 축제 부스를 찾았으나, 정보게시판과 프로그램 표에는 아프리카 영화 일색이었다. 공연이라고는 현지인들의 축하 쇼와 짧게 진행되는 전통춤이 전부였다. 더불어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영화 이외의 장르들이 별도로 진행되는가 싶어 문의해 보니, 아트 페스티벌이었지만 이제는 영화 페스티벌에 가깝다며 영화 감상을 권했다. 영화 쪽도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듯했지만, 아직까지 생소한 아프리카 신생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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