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는 책의 향기]대륙을 관통하는 열차에 오르면…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3분


코멘트
From: 박종호 정신과 의사, 오페라 평론가

To: 책을 좋아하는 풍월당(클래식 음반 매장) 지기들

대륙을 관통하는 열차에 오르면

늘 그랬듯이 소설여행을 떠난다

파리의 리옹 역을 떠난 기차는 제네바를 향해 달려간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책 읽기의 가장 좋은 기회는 여행이다. 비행기에서나 기차에서나 자리에 앉아 꼼짝할 수도 일할 수도 없으니, 어쩌면 지루할지도 모르는 이동 시간을 가장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것이 독서다.

그래서 나는 여행 가방을 꾸릴 때 책을 골라 넣는 기쁨을 함께 누린다. 비행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기차 여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 그동안 사서 쌓아 놓기만 했던 책들을 집어넣는다.

제네바까지의 고속열차인 TGV는 기존 노선을 이용하는 관계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흔들거리는 기차에서는 어려운 책보다는 한 손에 들고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더 좋다. 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많은 이론과 철학들을 소설에서 익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소설 속에 있었다’는 정도로 해 둘까? 어쨌든 나는 시간 나면 소설, 피곤하면 소설, 기분을 전환하려면 소설,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면 소설을 찾는다.

이번에 들고 간 소설은 유명한 외국 작가들의 것이다. 먼저 꺼내 든 것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불륜과 남미’(민음사)다. 제목보다 내용이 더 흥미로운데 한마디로 그녀가 쓴 많은 소설 중에서 정상의 자리에 놓을 만한 작품이다. 자신의 경험담처럼 기행문같이 쓰인 소설에서 특별한 것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과 애인과 그리고 혼자서 아르헨티나란 먼 땅을 차례로 방문하는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다양하게 그려 낸다.

다음으로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북폴리오)다. 이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소설의 재미를 보여 주는 청년 작가인데 만화책보다 더 만화 같은 표지와 인터넷 같은 문체에 비해 내용은 제법 진지하다. 이 소설은 한일 양국에서 영화화되었지만 두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 넘치는 재미와 감동이 가득하다.

또 하나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문학과지성사)다. 이 스페인 소설가의 책은 과거 ‘장미의 이름’이 주는 탄탄한 구성미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주는 성장기의 아련한 감동이 함께하는 멋진 소설이다.

아, 이제 기차는 제네바로 들어가지만 내 마음은 벌써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와 일본을 다녀왔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