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전율,추리소설 20선]<5>미스틱 리버

  • 입력 2007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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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의 운명 뒤흔드는 배신과 복수

기억은 결코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비록 아득한 옛일이었다 해도 실제의 삶 속에서 계속 리플레이되면서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면 기억의 시제를 더는 과거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억의 진짜 이름은 살아 있는 현재이거나 앞서 일어난 미래일지도 모른다.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는 미국 보스턴 변두리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세 친구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범죄 이야기이며 과거의 기억과 죄책감에 관한 심리학적 통찰을 담아낸 인과의 드라마다.

플로리다대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루헤인은 주차보조원에서 반전운동가까지 사회파 추리소설의 밑천이 될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았다. 그런 이유로 그의 작품들은 도시 빈민, 인종 차별, 성범죄, 유괴 등 사회파 추리소설의 문제의식과 하드보일드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장르 문법을 보여 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동명의 영화로 만든 ‘미스틱 리버’는 루헤인 표 미스터리의 전형적 특징을 고루 갖춘 잔혹한 운명 비극이다. 소설은 숀, 지미, 데이브 등 세 남자의 유년 시절을 잔잔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깊은 강 물살처럼 완만하고 유장한 흐름을 보여 주던 이야기는 성인이 된 지미의 딸 케이티의 죽음에서 급박해진다. 그리고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세 남자의 과거와 현재가 살인사건과 함께 씨줄날줄로 얽힌다. 사건을 맡은 형사 숀은 아내와 별거 중이며, 데이브는 한때 고교야구의 스타였으나 어린 시절 성폭행당한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전직 갱단 리더 지미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비통과 분노의 양극단 사이에서 시소게임을 벌인다.

현대 미스터리답게 소설은 절반의 권선징악과 절반의 찜찜함으로 종결되지만, 둔중한 문제의식을 던져 준다.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루헤인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의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드보일드 메시지가 그렇다. 남편을 믿지 못한 대가로 남편 데이브와 가정을 잃는 아내 셀레스테, 사랑의 이름으로 남편 지미의 모든 허물을 덮는 아나베스, 그리고 가정의 품으로 귀환하는 숀의 아내 로렌과의 선명한 대비라든지 개인적으로 사회악을 응징하려다 어이없는 최후를 맞는 데이브의 운명이 단적인 예다.

배신한 친구를 죽이고 그 친구의 자식들이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인과의 미스틱한 연쇄는, 이 소설의 약점으로 지목될지도 모를 거시적 관점과 반전의 결핍을 상쇄해 버린다. 루헤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미스틱 리버’는 미스터리 장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사회파 탐정소설의 대가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나 마쓰모토 세이초처럼 미스터리도 ‘사회적 발언의 한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명품 하드보일드로 ‘기억’될 것이다.

조성면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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