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또,또 불륜이냐고? 내 넋두리 들어봐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친밀감/하니프 쿠레이시 지음·이옥진 옮김/198쪽·9000원·민음사

제이는 가출하려 한다. 함께 산 여인과 두 아들을 두고서다. 그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다. 수많은 소설에서,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진부하지만 그 상황은 언제나 극적이어서 독자와 관객을 끈다. 딱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같은 발단.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는 대중적이지만 신선하지 않은 이야기를 쓰는 것 같다. 그런데 흡인력이 보통 아니다. 홀딱 벗겨 내쫓아도 시원찮을 것 같은 남자의 넋두리가 ‘문학적이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의 작가 쿠레이시. ‘친밀감’은 발표 당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소설의 설정과 작가가 처한 상황이 같아서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의 변명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지만, “내가 다른 여자를 너무 사랑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직설적인 하소연을 늘어놓지 않는다.

소설의 시간은 단 하룻밤이다. 제이는 아침이면 가방을 싸서 친구 빅터의 집으로 가려고 한다.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해서 남자의 머릿속에 여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다. 부모님이 부부 싸움할 때면 겁에 질려 귀를 틀어막았던 유년기, 사회에 대한 분노와 반항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 제이는 이제 정말 ‘다른 사람’이 돼 보고 싶다. 그런데 그의 가족은 그를 언제까지나 어두운 과거에 붙들려 있게 하는 것 같다.

게이 친구는 “뭐가 간통이냐, 그냥 섹스일 뿐인데”라고 말하고, 성실한 가장 친구는 “결혼은 살아갈 이유”라고 설득한다. 제이처럼 바람났던 친구는 “가족에게 상처를 준 게 괴롭다”고 털어놓는다. 저마다의 처지에서 하는 조언을 들으면서 제이는 자신만의 선택을 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로 괴로워하면서 가족을 버리려 하는 40대 남자의 선택은, 그래도 역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서글프다. 소설은 영화로 옮겨졌으며 2001년 베를린 영화제 작품상을 받았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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