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8년 만화 ‘슈퍼맨’ 첫선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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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14일 미국의 만화잡지 액션코믹스에 만화 ‘슈퍼맨’ 첫 회가 실렸다. 고교 동창 제리 시겔이 글을, 조 슈스터가 그림을 맡은 이 만화는 수없이 많은 출판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터였다. 마블과 함께 미국의 양대 만화회사로 꼽히는 DC코믹스가 새로운 만화잡지 액션코믹스를 창간하면서 신인들에게 기회를 줬던 것.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슈퍼맨 나오는 만화책 주세요”라며 앞 다퉈 가판대에 손을 내밀 만큼 만화는 히트를 쳤다. 괴상한 패션의 ‘몸짱’ 초능력자는 금세 스타가 됐다.

‘슈퍼맨(초인·超人)’이라는 말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처음 나왔지만, 만화 원작자들이 이 말을 니체의 저서에서 따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슈퍼맨’은 원작자의 판타지로 봐야 할 것이다. 부유하지도 않았고 육체파도 아니었던 시겔과 슈스터에게 슈퍼맨은 꿈의 남성 모델이었다. 원작자들은 정직하게도 자신들의 모습을 슈퍼맨의 다른 자아 클라크 켄트에 담아 놓았다. 어수룩하고 순박한 사내의 양복 속에 지구를 구할 쫄쫄이 의상이 숨겨져 있다는 설정은 극적이었다.

라디오와 소설,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던 ‘슈퍼맨’은 1978년 영화 ‘슈퍼맨’의 개봉으로 세계적인 캐릭터로 자리 매김 한다. 파괴되는 크립톤 행성에서 피신한 어린애가 지구의 노부부에게 발견돼 길러지고, 성장해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걸 알게 된 뒤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거듭난다는 얘기다.

문화 아이콘이 된 많은 캐릭터가 그렇듯 슈퍼맨에도 다양한 해석이 덧입혀졌다. 외계인 슈퍼맨이 지구로 와서 영웅이 된다는 것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온 이민자들이 세계 평화의 수호자가 된다는 ‘미국의 신화’와 겹쳐진다. 예수의 변형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외계인 아버지가 슈퍼맨을 지구로 보냈다는 것, 평범한 성장기를 거쳤다가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으로 바뀐다는 것 등이 그렇다. 원작자가 처음에 지구인 양어머니 이름을 ‘메리(마리아)’로 지은 것도 흥미로운 사례였다(나중에 이름이 ‘마사’로 바뀐다).

영화를 보는 평범한 관객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소심한 사내가 옷을 갈아입고 악당을 무찌를 때 어렸을 적 황당한 꿈이 잠시나마 이루어진 것 같은 마음에 열광한다. 만화에 푹 빠진 두 남자가 70여 년 전 만들어 낸 캐릭터는 이제 현대의 신화가 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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