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성석제의 그림 읽기]돈값

  • 입력 2007년 6월 9일 03시 03분


‘나란히, 물고기, 고양이’ 조앤 그랜트 그림·문학동네 펴냄
‘나란히, 물고기, 고양이’ 조앤 그랜트 그림·문학동네 펴냄
나사못을 몇 개 사려고 철물점에 갔습니다. 철물점 문이 닫혀 있어 그 옆에 있는 전기 통신 공사 전문이라는 큰 가게로 갔지요. 가게 안이 비좁아 보이도록 물건이 많았고 가게 밖에도 전선과 파이프 등속을 쌓아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은 무척 바빠 보이더군요. 제가 가게 안에 들어섰지만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무슨 계산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종업원이 통화를 마치고 나에게 무슨 일로 왔는가 물었습니다. 나사못이 좀 필요하다고 했더니 줄지어 서 있는 선반 사이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더군요. 그는 조금 뒤 나사못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나타났지요. 그런데 내게는 그 나사못이 좀 많아 보였습니다.

“저, 그 비닐봉지에 나사못이 몇 개나 들어 있는 거죠?”

내가 묻자 종업원은 주인을 향해 물었습니다.

“한 봉지에 1000개죠?”

정수리 부분의 머리가 동그란 모양으로 빠진 주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응” 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말했지요.

“저는 나사못 네다섯 개만 있으면 되는데요. 아니 넉넉하게 한 열 개쯤….”

그러자 주인이 그 무거운 고개를 들고 말하더군요.

“그렇게는 안 팔아요.”

“안 팔다뇨? 왜요?”

가게 주인은 만년필로 계산기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천 개짜리 봉지를 한 번 뜯은 다음에 다섯 개, 열 개씩 팔아가지고 어느 천년에 한 봉지를 다 팝니까?”

“보통 사람이 저 나사못 한 봉지 사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써도 다 못 쓸 텐데, 그 생각은 해 보셨나요?”

“안 그래도 바쁜데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해야 돼요?”

밖으로 나와 빈손으로 집으로 가다 보니 뭔가 억울했습니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서 주인에게 물었지요.

“거 나사못 한 봉지가 얼만데요?”

“4000원요.”

주인은 다시 책상을 향해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돈이 제값을 하는 것 같네요.”

그냥 돌아 나오기 싫어 말을 하긴 했지만 주인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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