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211>龍蛇之蟄, 以存身

  • 입력 2007년 6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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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끔 숨어 지낼 필요가 있다. 예전의 선비들은 책을 읽는 기간에는 몸을 숨겼다. 그리고 독서에 정진하다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 선비를 만난 사람들은 그 선비의 자세나 생각이 깊어지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禪房(선방)에 들어가면 한 세월을 세상에 나오지 않는 스님들도 있다. 그들은 세상이 무서워서 숨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이 싫어서 숨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잠시 몸을 숨기는 것이다.

‘龍蛇之蟄(용사지칩), 以存身(이존신)’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龍’은 ‘용’, ‘蛇’는 ‘뱀’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龍蛇’가 하나의 단어로서 ‘뱀’을 나타낸다. ‘蟄’은 ‘숨다’라는 뜻이다. ‘以’는 ‘-로써, -로서’라는 뜻이다. ‘以五十步笑百步(이오십보소백보)’는 ‘오십 보로 백보를 비웃다’, 즉 ‘오십 걸음 도망간 사람이 백 걸음 도망간 사람을 비웃다’라는 말이다. ‘存’은 ‘존재하다, 살게 하다’라는 뜻이다. ‘父母俱存(부모구존)’은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다’는 말이다. ‘俱’는 ‘함께, 모두’라는 뜻이다. 이는 예전에는 행복의 필수조건이었다. ‘身’은 ‘몸, 신체’라는 뜻이다. 이상의 의미를 정리하면 ‘龍蛇之蟄, 以存身’은 ‘뱀이 몸을 숨기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몸을 살리려는 것이다’, 즉 ‘뱀이 겨울잠을 자는 것은 살아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 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있다. 뱀이 그렇고 개구리가 그렇다. 곰도 겨울이 오면 동굴에 들어가서 몸을 피한다. 그리고 봄을 기다린다. 그들은 세상이 무서워서 숨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나기 위해서 몸을 숨기는 것이다. 요즈음 항상 보아온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한다. 몸을 숨긴 채 나라와 사회를 위한 내공을 충분히 쌓아온, 그런 사람은 과연 없는 것일까?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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