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쫄깃한 수다]신인 민지혜의 ‘초콜릿 무대인사’

  • 입력 200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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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배우 민지혜가 초콜릿을 포장하고 있다.
신인 배우 민지혜가 초콜릿을 포장하고 있다.
“온도 조절이 핵심이에요. 49도까지 올렸다가 27도로 내리고, 다시 32도까지 높여야 돼요. 그래야 초콜릿 맛이 부드럽고 광택이 나서 보기에도 예쁘거든요.”

지난달 31일 토요일 오후, 영화 ‘뷰티풀 선데이’에 나온 신인 배우 민지혜에게 초콜릿 만드는 법 강의를 듣고 있다. 그가 무대 인사를 가는 버스 안이다. 이번에 처음 주연으로 나선 이 신인은 무대 인사를 위해 관객들에게 줄 초콜릿 300개를 직접 만들었다. 방산시장에서 다크 초콜릿 덩어리 5kg을 사서 녹여 틀에 굳힌 뒤 일일이 포장해 리본을 달았다. 촬영이 끝난 뒤 동네에서 취미 삼아 배웠다고. 하나 받아 먹어 봤더니 맛있다. 달지도 않고 산딸기 시럽과 생크림을 섞었다는 내용물도 부드러웠다.

‘처음’은 항상 특별하다. 자신이 처음 주연한 영화가 상영되고 그 관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얼마나 설렐까. 그가 창밖을 바라보며 긴장을 푸는 동안 영화계에서 배우들의 홍보활동에 이용되는 이 전용버스를 처음 타 본 기자는 신기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노무현 대통령을 꼭 닮은 운전사 아저씨(그것 때문에 TV에도 나갔다고) 때문에 더 유명한 ‘시네마 버스’. 뒤편에 있는 테이블과 소파에선 진광교 감독과 배우 박용우 남궁민이 초밥을 먹고 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앞에서 출발한 버스는 강을 건너 CGV 용산으로 향했다.

다른 배우들의 여유로움에 비해 민지혜에게는 모든 것이 ‘떨림’ 그 자체다. 제작보고회 때 청심환을 먹고 무대에 섰다는데 이날도 잠을 설쳐 새벽부터 뉴스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며칠 동안 열심히 만든 초콜릿을 들고 “관객들이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안 믿겠죠? ‘쟤 너무 한가한가 보다’ 생각함 어쩌죠?” 하며 사소한 걱정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작은 비판과 지적에도 금방 의기소침해져 “강해지고 싶다”는 초짜 배우에게 주제넘게 격려도 했다.

이날의 무대 인사는 용산에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메가박스 코엑스까지 이어졌다. 일정을 끝낸 민지혜는 “우리 동네 극장(그는 건대입구에 산다)에 배우로 서다니…” 하며 “영화를 선택해 주신 관객 한 분 한 분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만났던 배우들을 생각했다. 의례적인 1시간가량의 인터뷰로 속내를 알기는 어려웠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황홀함도 익숙해지면 어느새 일상이 된다. 민지혜도 조금은 변할 거다. 지금의 감격도 줄어들고, 톱스타가 된다면 시장에 나가 초콜릿 재료를 사는 것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지만 원래 상황이 바뀌면 마음도 행동도 바뀌는 게 인간적인 거다. 다만 처음을 기억하고 똑같이 행동하지는 못해도 그냥 하루하루의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이면 좀 낫게 살 수 있지 않나. 매주 하는 인터뷰인데도 처음 타보는 버스 안에서 한 것, 배우들의 동선을 쫓아간 것 등 작은 ‘처음’들 때문에 그날은 꽤 즐거웠다. 생각해 보면, 생의 매 순간순간이 ‘처음’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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