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7년 3월 29일 03시 0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이날 박물관 측은 “불교사와 언어학, 고활자 연구자, 보존과학자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석가탑 유물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석가탑 중수기(重修記·수리 내용을 적은 글·1024년)가 담긴 묵서지편과 이 유물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박물관 측은 또 “1988년 다라니경을 보존처리하면서 이 유물을 확인했으나 ‘두루마리가 한 덩어리로 굳어 있어’ 보존처리가 어려웠다”며 “다라니경만큼 높은 비중으로 취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유물은 석가탑 유물 현황에서 ‘기타 유물’로 분류돼 있다. 이 두루마리는 국보로 지정돼 있지 않다.
이 유물에 대해 국보 126호 다라니경과 동시대의 ‘다라니 목판인쇄물’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다라니는 범문을 번역하지 않고 음역한 것을 뜻한다. 다라니경은 부처의 제자들이 부처에게서 들은 진언(眞言)을 적은 것으로, 국보 126호 다라니경에는 여섯 가지 소(小)다라니의 작법(作法)과 이로 인한 공덕(公德)이 담겨 있다.
박상국 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실장은 “다라니경에 따르면 소다라니 중 상륜(相輪) 다라니와 자심인(自心印) 다라니를 99번씩 써서 탑 속에 따로 봉안하게 했으며 바라밀(번뇌가 없는 피안으로 건넌다는 뜻)을 모두 성취하려면 네 가지 다라니를 각각 99번씩 써서 탑에 넣으라고 돼 있다”고 말했다.
즉, 똑같은 다라니를 99번이나 써서 탑 안에 넣을 것을 요구한 다라니경의 내용이 다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목판인쇄물의 발명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이 해독한 중수기 내용은 이 유물이 다라니 목판인쇄물일 가능성을 더욱 높여 준다. 안 위원은 “‘중수기에 무구정광다라니(경) 9편과 무구정광다라니경 1권’이라고 적혀 있다”며 “앞에 괄호를 친 것은 박물관이 중수기 원문에서 이 글자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뒤의 다라니경은 국보 126호 다라니경을 가리키고 앞의 것은 다라니 인쇄물을 가리킨다는 의미다.
그는 “이 유물이 국보 126호 다라니경과 달리 펼쳐지지 않은 채 비교적 온전하게 있었던 것은 소다라니 여러 벌을 감싸면서 흩어지지 않게 실로 꽁꽁 묶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국보 126호 다라니경의 종이와 똑같은 크기, 두께의 종이를 제작해 두루마리를 만든 뒤 비단 모형으로 감싸 실로 묶는 실측 실험 결과 ‘또 하나의’ 두루마리 유물과 크기가 거의 같았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한편 박물관 측은 중수기 판독 결과 다라니경의 제작연대가 통일신라시대(8세기 전반)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