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6년 시인 실비아 플래스-테드 휴스 첫만남

  • 입력 2007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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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애무를 하며 내 귀걸이와 헤어밴드를 낚아챘다. 그가 내 목덜미에 키스할 땐 나도 그의 뺨을 세차게 물어뜯었다.”

1956년 2월 26일 미국의 여류시인 실비아 플래스는 남편 테드 휴스와의 운명적 첫 만남을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젊고 재기발랄한 시인 지망생 플래스와 후에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계관(桂冠)시인까지 지냈던 저명한 시인 휴스의 사랑은 영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로맨스 중 하나였다.

플래스의 삶은 그와 실제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듣는 배우인 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실비아’로 제작돼 2005년 국내에도 개봉됐다. 또 이들의 불같은 연애 스토리는 수많은 영문학도 사이에 회자되면서 한때 국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플래스의 시를 외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1986년 휴스에 의해 출간된 ‘실비아 플래스의 일기’에서는 남편에 대한 그의 감정이 매우 다중(多重)적이었음이 엿보인다.

“세상 무엇보다 가깝고 다정한 그. 병적이고 추하고 코나 훌쩍거리는 나를 보고도 안아 주는 그. 아침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타 주고 티타임엔 홍차를 주는 그…이 사랑이야말로 평생 찾아 헤매던 것이다.”

격정적인 연애 감정 외에도 플래스는 시인으로서 남편에 대해 존경심을 느꼈다. “그는 내 시를 비평하면서 곳곳에 올바른 단어를 찾아준다. 정말이지 오류를 모르는 사람이다.”

휴스는 T S 엘리엇, W H 오든 등 세기적 문호(文豪)와 견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반대로 플래스는 출간한 시집이 번번이 실패하는 등 좌절을 반복했다.

존경은 이내 질투로 변했다. “내 자신이 비참해지다 보니 휴스가 신경 쓰인다. 그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시인임을 알기에….”

사랑이 시기심으로 점철될 무렵 플래스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챘다. 그리고 결혼 6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난 덕일까. 결별 후 극도의 고통 속에서 보낸 날들은 역설적으로 작가로서는 최고의 시절이었다. 그의 대부분의 걸작들이 이 시기에 배출됐다.

하지만 플래스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생활고, 우울증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1963년,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혹한 속에서 그는 수면제를 마신 뒤 부엌의 오븐에 머리를 박고 가스를 틀었다.

천재는 단명(短命)한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그의 나이 31세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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