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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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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은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증언해 줄 유일한 생존자. 경찰은 그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지만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숨진 7명은 시카고 북부를 장악하고 있는 갱단 두목 조지 모란의 부하들이었다. 나중에 숨진 한 명은 입이 무겁기로 유명해 ‘꼭 다문 입(Tight Lips)’이라는 별명을 가진 프랭크 구센버그. 그는 숨지기 전까지도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총기를 난사한 쪽은 시카고 남부를 장악한 뒤 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알 카포네의 부하들. 금주령 시대에 밀주(密酒) 유통을 둘러싼 세력 다툼의 결과였다. 경찰은 이날 현장에서 160발 이상의 탄피를 수거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1면에서 이렇게 전했다.
‘시카고 갱단 두목들은 자동소총과 총탄을 갖고 밸런타인데이를 맞았다. 시카고 암흑가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학살이었다.’
‘밸런타인데이의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는 창고 근처에 살고 있던 한 여인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총성이 울린 뒤 두 명의 경찰이 창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봤어요. 그들이 나오자 어떤 남자들이 손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죠.”
조사 결과 이 장면은 알 카포네 조직의 ‘연극’으로 드러났다. 조직원들이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경찰과 피의자로 위장해 ‘범인 검거’ 장면을 연출한 것. 이 사실은 경찰을 자극했다. 경찰은 즉각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알 카포네는 암흑가의 대부(代父)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던 것 같다. 알 카포네는 시카고 경찰뿐 아니라 연방정부의 요주의 감시 대상이 됐다. 사건 발생 4년 뒤 그는 탈세 혐의로 수감돼 옥살이를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폐인이 됐다.
연인이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 하지만 1929년 시카고의 밸런타인데이는 사랑의 고백 대신 총성과 피로 얼룩진 날이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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