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도종환/‘희망의 바깥은 없다’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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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다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많이 싸운

곪은 상처 그 밑에서 새살이 돋는 것처럼

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

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

희망의 바깥은 없다

시집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중에서》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씀바귀뿐이랴, 온통 얼어붙은 동토의 땅에 여름의 초록불이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갈기처럼 성근 겨울 산이 해마다 나뭇잎 파도로 굽이치는 것은 얼마나 기적인가. 희망이 저 먼 곳에서 오지 않고 ‘제 속에서’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전언인가. 희망의 바깥은 없다니 막다른 곳처럼 여겨지던 절망의 얼굴은 얼마나 왜소한가. 새날이 밝았다. 아픈 이들이여,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찬물을 들이부어라.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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