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애절…발랄…내실있는 앨범으로 눈길 30대 중반 실력파 가수

  • 입력 2006년 12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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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가? 가요계 10월 전쟁을… 이승철, 신승훈을 비롯해 비, 세븐, '동방신기' 등 빅스타들의 음반 발매가 이어졌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은 콘서트파(이승철, 신승훈, 싸이 등), 연말 방송사 시상식파('동방신기', MC몽 등)으로 나뉘어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빅스타들이 떠난 세밑 가요계는 누가 지키고 있을까? 바로 30대 중반의 실력파 뮤지션들이다. 10년 만에 데뷔 앨범을 발표한 '낯선사람들'의 전 멤버 고찬용과 4년 9개월 만에 9집으로 컴백한 김현철, 그리고 영화 '미녀는 괴로워' 사운드트랙으로 연말 온라인 음악 시장을 석권한 '러브홀릭'의 이재학. 세 남자가 꾸리는 12월 연말 가요계는 '요란함' 대신 '내실'이 자리하고 있다.

○ Yellow… 10년 숙성된 '고찬용'표 그루브함

데뷔 앨범이 나온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그는 여전히 경기 일산의 자택에서 칩거 중이다. 인터뷰는 낯설어서 부담스럽고 방송 같은 건 생각도 없단다. 매니저도, 소속사도 없이 덜렁 나온 앨범, 바로 16년 전 자작곡 '거리풍경'으로 제 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고찬용(36)의 첫 솔로 앨범 '애프터 텐 이어스 앱슨스'다.

"1993년 이소라 씨와 음악 동료들과 함께 재즈 그룹 '낯선사람들'로 활동했었죠. 하지만 1995년 2집까지 활동 하다 3집 작업에 들어가면서 '공황장애'를 앓았죠. 자연스레 음반 발매는 무기한 연기됐고 팀원들은 지쳐 결국 2000년 해체됐죠."

1998년 '낯선사람들'의 전 멤버 허은영과 결혼한 후 그는 이소라 등 동료 가수들의 음반에 참여했지만 때로는 수입이 없어 "부모님 도움을 얻어 산적도 있다"며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공황장애' 속에서도 틈틈이 미디음악 공부, 기타 연습 등 음악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뮤지션으로 한국에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무리 히트가 중요하다 하지만 전 자신의 인생이 녹아 있지 않은 노래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사기'라고 생각했기에…"

강한 신념으로 10년 만에 발표한 그의 1집은 20대 초반 아마추어 뮤지션 때를 회상하며 만든 '꿈꾸는 아이'부터 30대 중반 아저씨로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담긴 10번 트랙 '오늘 하루는'까지 퓨전 재즈, 펑키, 포크 등의 '그루브'로 버무려졌다. 앨범 제목과 달리 '10년의 부재'를 느낄 수 없게 하듯.

"투박한 이름 '고찬용' 세 글자 적힌 음반이 10년 만에 나왔지만 2집은 안 그럴 거에요. 앞으로 자주 내야죠. 비록 소속사 없이 혼자서 '독립군'처럼 활동하지만 돈 없이도 좋은 음악은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언젠간…, 저 참 투박하죠?"

○ Blue… 새삼스럽게 사랑을 논하는 김현철

음악 얘기를 하기 전에, 확 달라진 그의 외모부터 짚고 넘어가자. 늘 한결같았던 '모범생'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곱슬머리에 스타일리쉬한 뿔테 안경, 빠진 볼 살… 데뷔 17년 만에 드디어 '비주얼' 가수가 되려는 것인가? 그의 대답은 '푸훗' 웃음으로 시작됐다.

"하하. 아내가 시켜서 머리 볶았어요. 얼굴 살 빠진 건 일주일에 두 번씩 산악자전거 타서 그런 거고요."

어느 덧 가정 얘기는 그의 일상이 됐고 결혼 후 두 장의 '키즈 팝' 앨범도 발표했으니 '나를', '일생을' 등의 애절함도, '왜그래', '거짓말도 보여요' 같은 소솔한 사랑 얘기도 이제 남의 얘기일 줄 알았다. 그러나 4년 9개월 만에 발표한 9집 '토크 어바웃 러브'에서 그는 다시 총각 시절로 돌아간 듯 사랑 얘기를 주섬주섬 꺼냈다.

"사랑 노래는 '내 인생의 캠페인 송' 격이죠. 흔히 총각 뮤지션이 장가가면 '퍼져서' 애절함이 없어진다는데 애절함은 여전한 것 같아요. 다만 이젠 연인 얘기뿐 아니라 계층 간의 사랑 얘기도 해보고 싶어요."

타이틀 곡 '결혼도 못하고'는 제목부터 애절하다. 후렴구에 퍼지는 웅장한 스케일은 마치 보란 듯 애절함을 나타낸 듯 하다. 흔히들 '가수는 제목 따라 간다'는 말이 있는데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그가 왜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친구 얘기에요. 결혼 날짜까지 잡았는데 교통사고로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냈던, 7년이 흐른 지금도 결혼조차 못하고 있죠. 만약 내가 그 입장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만든 곡이에요. 사실 그 친구는 자기 얘기인 줄 모르고 있는데… 얘기 안 하려고요."

그러나 애절함은 여기까지. 라디오에 대한 애찬을 담은 '원더풀 라디오'나 '그 언젠가로', 보사노바 풍의 '에스프레소-마끼아또'에서 그는 변함없이 통통튀는 음악적 '끼'를 발산한다. "데뷔 17년이 지났지만 아직 내 음악을 정의 내리기 힘들다"며 여전히 보여줄 게 많은 듯 웃는다. 작사, 작곡가로서, 그리고 '더 플레이', '파리의 연인들' 같은 뮤지컬 음악가로서 활동을 넓혀가는 30대 중반 뮤지션. 그러나 수록곡 '켈리' 얘기를 꺼내자 그의 실체가 바로 드러났다. 바로 '공처가 김현철'

"아내 영어 이름이 '켈리'에요. 두 아들에게 '아빠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만든 노래야'라고 알려줬더니 금세 가사를 외워서 흥얼거리더군요. 이런 게 바로 싱어송라이터의 특권이 아닐까요? 아… 근데 저 이제 침 맞으러 가야 돼요. 며칠 전 아들하고 눈사람 만들다가 허리를 삐끗했거든요."

○ Red… 미녀는 괴로워? '영화음악 감독' 이재학은 즐거워!

"정말 기대 못했어요" "너무 신기해요" "와…" 등 인터뷰 초반부터 탄성만 지르는 이 남자, 바로 배우 김아중을, 뚱녀 '한나'를 화려한 가수로 만든 일등공신인 3인조 모던 록 밴드 '러브홀릭'의 베이시스트 이재학(35)이다.

그가 영화음악 감독으로 변신, 첫 작품으로 맡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수록곡들이 김아중의 입을 타고 '대박'을 터트리고 있다. 그녀가 부른 '마리아'는 1980년대 록 밴드 '블론디'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벅스뮤직 차트, 사이월드 배경음악 차트, 네이트온 컬러링-벨소리 차트 등 각종 온라인 음악 차트 1위에 올랐다. 또 '뷰티풀 걸', '별' 등의 수록곡 역시 연달아 히트하고 있다.

"국내에서 영화 사운드트랙이 인기를 얻기 힘들잖아요. 음악 감독 맡은 것도 친구인 감독(김용화)이 부탁을 한 건데… 대충대충 했다가 우정이 망가질 것 같아 처음엔 겁나서 완곡하게 고사했죠."

그런 그를 움직인 것은 바로 배우 김아중이었다. "프로라 하기엔 2% 부족한 느낌"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그녀를 채운 것은 바로 '노력'. 바쁜 시간을 쪼개 연습한 것은 물론이고 후반부에는 3일 밤을 새며 노래, 나중엔 "이 부분 소리가 어떻고…" 식의 지적까지 할 정도가 됐다고 한다.

"노래 잘하는 여가수를 만들기 위해 켈리 클락슨이나 에이브릴 라빈 등의 카랑카랑한 여성 보컬을 떠올렸죠. '소몰이 창법'의 리듬앤드블루스 가수들이 최고의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가요계 풍토에 대한 반항심도 있었죠."

'러브홀릭' 멤버들의 반응은 어떨까?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아휴~ 지금도 '영화음악 감독'이라며 놀려요"라며 손사래 친다. 그래도 '영화음악 감독' 소리가 싫지만은 않은 듯 점잖은 말을 이어갔다.

"영화음악 하면서 제 스스로도 음악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됐어요. 그간 제 음악적 능력만 믿은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영화음악을 하든 안 하든 음악 공부는 꼭 하려고 합니다. 서른 다섯 나이에… 저 철 좀 들었나 봐요. 하하"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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