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6년 美길모어 사형 최종판결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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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읽은 소설가 공지영의 최근 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

“게리 길모어도 그때 만났다.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 시민 둘을 쏘아 죽였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연하게, 나를 죽이면 당신들은 나의 마지막 살인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조소 띤 얼굴로 이야기 했었다.”

게리 길모어….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범죄자. 미국에 사형제도를 부활시킨 살인범. “제발 나를 죽여 달라”고 언론과 법원에 호소한 인물.

그가 사형수가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식구들을 두들겨 팼다. 가혹한 체벌과 학대. 반항심이 일었다. 모든 게 싫었다. 학교도 친구도 아버지도…. ‘다들 내 눈에서 사라졌으면.’ 소년은 일찍부터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소년원을 들락거리며 좌절과 분노, 사회에 대한 불만이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나이를 먹은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노상강도 혐의로 10년 가까이 감옥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석방 상태로 사회에 내던져진 그는 유타 주 프로보에서 이틀간 시민 두 명을 총으로 쏘아 살해했다. 이유? 그런 건 없다. 그저 죽이고 싶어서 죽였을 뿐이다. 왜 죽였는지는 모른다.

1972년 미 대법원이 사형 집행을 중지시킨 뒤 미국에선 10여 년간 사형제도 존폐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길모어의 ‘이유 없는 살인’은 미국에 사형제를 부활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76년 11월 10일. 미국 대법원은 길모어를 사형시키기로 확정지었다. 길모어가 그렇게도 원한 바였다.

이듬해인 1977년 1월 17일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만약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아직도 미국에는 사형제가 부활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길모어가 이 세상에서 한 마지막 말은 “집행합시다(Let's do it)”였다고 한다.

그의 동생인 마이클 길모어는 나중에 ‘내 심장을 쏴라’는 책을 펴내고 가슴 아픈 가족사와 형의 절망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한 사형수의 삶을 다룬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최근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모티브가 된 게리 길모어의 슬픈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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