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창업+아지트,꿈을 이루는 공간…‘동업 카페’

  • 입력 200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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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의 음악과 낭만, 여유를 얻기 위한 공간으로 홍대 앞에 카페를 차린 김의식 임태병 김영혁 씨(위쪽 사진 왼쪽부터). 사진 제공 비하인드
대학시절의 음악과 낭만, 여유를 얻기 위한 공간으로 홍대 앞에 카페를 차린 김의식 임태병 김영혁 씨(위쪽 사진 왼쪽부터). 사진 제공 비하인드
《1997년 3월 서울 홍대 앞의 한 카페.

새내기 여대생 세 명이 모여 앉아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다.

“사무실을 카페처럼 꾸며 놓고 자유롭게 일하는 프리랜서,멋지지 않니.”(백오연)

“영화 같다. 자유롭게 작업도 하면서 카페에서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김지은)

“일에서 자유로운 우리의 보금자리이면서 돈도 벌고…. 얼마나 좋을까.”(박지영)

“맞아. 우리 졸업하면 셋이 모여 한번 해볼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돈도 벌 수 있는 우리만의 해방구.’

고교와 대학 시절, 누구나 한번쯤 친구들과 해봤을 얘기다.

각박한 사회생활과 형식적 인간관계에 지친 직장인. 자기 뜻대로 운영하는 공간을 갖는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는 영원한 노스탤지어다. 절친한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라면 더욱 좋다. 그때 많이 떠올리는 공간이 ‘카페’다.

그러나 ‘공간 확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이 개입되면 낭만은 냉엄한 현실로 바뀐다. 본업이 아닌 ‘세컨드 잡’이라 해도 어린 시절 꿈꿨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술자리 농담처럼 주고받던 얘기를 실천에 옮기는 이들이 있다. 나이 들어 여유가 생겨서가 아니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20, 30대가 많이 도전한다. 함동철 FSC외식경영연구소장은 “카페 개업을 문의하는 젊은 세대는 돈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좇아 사업에 뛰어들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30의 또 다른 삶을 향한 날갯짓, 카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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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한다

“오늘 하루도 힘내자. 수고∼.”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의 한 카페. 20대 후반의 세 여성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들어선다.

백오연, 박지영, 김지은 씨. 스무 살 시절의 친구들은 사회에서 각자 다른 분야로 흩어졌다. 디저트 작가, 패션큐레이터, 아트디렉터. 그러나 그들은 한 장소로 출근한다. 대학 새내기 때부터 꿈꾸었던 그들만의 공간, 카페 ‘아틀리에&프로젝트’의 주인들이다.

오연 씨는 깔끔한 흰 타일 벽에 오밀조밀한 그릇이 정리된 주방에서 소매를 걷어붙인다. 옷 진열대로 향하는 지영 씨와 각종 사진, 책이 쌓인 책상으로 향하는 지은 씨. 같이 운영하면서도 각자의 공간이 있다.

금방 주방에선 고소한 냄새. 지은 씨는 전화기를 붙잡고 광고제작자와 씨름 중이다. 서로 자기 일에 정신없던 순간, ‘딸랑’ 종소리와 함께 낯선 남녀 2명이 들어선다. 그 순간 “어서 오세요.” 서로를 바라보는 28세 동갑내기들의 눈빛이 미소로 변했다.

“셋 다 프리랜서인데 근방에 사무실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독립 사무실을 가질 만한 여유는 없었죠. 일은 다르지만 공동 작업실을 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 ‘같이 카페나 하자’던 꿈이 생각났어요. ‘작업실+카페’ 아이디어의 출발이었죠.”

장소 임차는 했지만 그 다음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꾸미고 가꾸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특히 자기 일에 바빠 카페 일은 남에게 미루는 게 문제였다. 그때 카페에서 연 ‘에곤 쉴레’ 페스티벌이 전환점이 된다.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으로 카페를 새 단장했다. 지영 씨와 지은 씨는 쉴레의 색감이 담긴 옷을 만들고 그림을 배치했다. 동일한 분위기의 음식은 오연 씨 담당. 작은 페스티벌은 성공했다. 주위에서 ‘독특한 카페’로 자리 잡으며 스스로 깨닫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툰 적도 많았습니다. 시작은 생각처럼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자신의 공간을 자기가 지킨다는 의식이 없었던 거죠. 그때 떠올린 게 우리의 직업과 연관시킨 ‘공간을 통한 자기표현’이었습니다. 즐길 수 있다면 애정도 생길 거라고 믿은 거죠.”

○ 목적은 수익이 아니라 꿈의 실현

작업실 겸 카페는 그나마 사무실 임차료 절약이 가능하다. 해방구 기능만 가진 공간 마련은 또 다르다. 홍대 앞 카페 ‘비하인드’의 김영혁(회사원) 씨는 “웬만큼 독하지 않으면 준비하다가 엎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조언했다.

비하인드의 주인은 건축설계사인 임태병 씨를 비롯해 모두 4명. 서강대의 음악감상 동아리인 ‘소리뭉치’ 선후배 사이다. 동아리 방이 없어 음악감상과 토론이 가능한 카페를 찾아다니던 한(?)이 결국 자신들 소유의 카페를 탄생시켰다.

합의 이후에도 준비과정만 1년 7개월이 걸렸다. 음식 인테리어 마케팅 회계 등 역할을 분담하고 시장조사를 했다. 운영 중에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규칙을 만들었다. ‘아는 사람에게도 공짜는 없다’는 철칙은 지금도 지킨다.

“목표가 생기자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술을 줄이고 안 쓰고 아꼈죠. 서로 열심히 격려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덕분에 원래 계획보다 단축된 1년 7개월 만에 개장이 가능했지요.”(임태병 씨)

30대 남성 4명이 카페를 열자 주위에선 부러워했다. ‘카페를 열었으니 돈 많이 벌겠다’ ‘먹고 살길이 마련됐으니 맘 편하겠다’는 말도 많았다. 학원 강사인 김의식 씨는 “20대의 꿈이 우선이지 돈은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언제든 넥타이 풀고 편하게 들를 공간을 원했어요. 들어서면 어린 시절의 꿈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원하는 음악을 실컷 들으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거죠. 그런 공간을 유지하려면 수익이 나야 했습니다. 카페는 그런 의미에서 딱 맞는 공간인 셈이죠.”

“돈 벌 목적이라면 공동 카페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4명이 4등분으로 나누니 남는 게 별로 없어요.(웃음)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목적으로 모이고 우리만의 공간 자체가 목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임 씨)

○ 꿈은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 이뤄진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30대 초반의 K 씨와 P 씨. 프리랜서로 여유 자금이 있던 그들은 2003년 강남에 와인바를 차렸다. 낭만적이면서도 세컨드 잡으로 수익도 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돈에 욕심을 두진 않았지만 ‘대충 대충’이 문제였다. 영수증 정산이 자꾸만 미뤄졌고 기본적인 설거지도 까먹었다. 본업을 핑계로 문을 늦게 열고 피곤할 땐 일찍 셔터를 내렸다. 손님이 있는데도 업무를 본답시고 큰 소리를 냈다. 장사가 잘될 리 만무했다.

K 씨는 “영화처럼 즐기고 싶었는데 현실은 운영비 감당도 힘들었다. 수익은커녕 돈만 더 들어갔고 친구 사이도 나빠졌다. 결국 서로의 탓을 하기 시작했고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함 소장은 이들의 실패 원인을 ‘창업 동기의 실종과 현실감의 부재’에서 찾았다.

돈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카페 운영은 현실이다. 카페 역시 사업이라 할 일과 안 할 일에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장보기와 청소 등 사소한 일도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일을 분담하지 않으면 서로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카페를 운영하려던 초심을 잃지 말고 의지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생각은 가장 위험하다. 좋을 땐 모르지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의욕을 잃기 쉽다. 열정과 배려가 없으면 공동 카페는 오히려 친구 사이를 망치는 독약이 된다.

함 소장은 “막연히 자아실현만을 생각해 카페를 공동으로 창업하려던 이들은 절박하지 않은 탓에 준비 과정에서 포기하기 쉽다”면서 “정말 얻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면 철저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글=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2030세대 카페동업 붐… 3~5명이 이상적▼

“친구들과 동업으로 카페를 차려볼까 합니다만….”

몇 년 전만 해도 창업컨설팅 회사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4050세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다르다.

혼자 카페를 차리는 것에 대해 문의하는 이들은 여전히 40, 50대가 많다. 하지만 카페 공동 창업을 고려하는 사람 중에는 20, 30대가 의외로 많다.

FSC외식경영연구소 함동철 소장은 “3명 이상이 공동으로 카페를 차리겠다며 문의하는 사람 중에 20, 30대 비율이 특히 높다”며 “과거에는 전화상담을 할 때 으레 40대 이상의 중년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반드시 나이를 물어 본다”고 말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조계헌 이사는 “카페를 공동 창업하는 목적을 물었을 때 ‘즐기기’라고 답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20, 30대”라고 말했다.

이렇듯 희망자는 늘어나지만 정작 전문가들은 ‘정신적 해방구’ 개념의 카페 창업을 적극 권하지 않는다. 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느슨하게 준비해 운영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손님이 안 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 것.

젊은 시절에 꼭 친구들과 카페를 하고 싶다면 ‘동업계약서’를 철저히 작성하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친하고 편한 사이라는 이유로 말로만 누가 무엇을 담당한다는 식으로 정하면 작은 문제만 발생해도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우정도 상할 수 있다.

동업계약서에는 각자 담당할 역할과 일하는 시간, 수익 분담 기준은 물론이고 아는 사람이 왔을 때 공짜를 줄 수 있는 선까지도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동업자를 많게 하는 것도 취미를 위한 카페 창업에 좋은 방법. 동업자가 많을수록 재정적인 부담과 업무를 분산하는 게 수월하기 때문이다.

조 이사는 “재정적 리스크와 업무 분담 차원에서 3∼5명이 동업을 하는 게 적당하다”며 “그러나 동업자가 5명을 넘어가면 생각을 모으고 결정을 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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