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추석,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 입력 2006년 10월 5일 03시 06분


코멘트
정원을 산책하다 은은한 분꽃 향기를 따라가 꽃잎 사이에 숨어 있는 꽃씨를 받았습니다. 꽃씨마다 작은 소망을 담아 가족 친지에게 보내려고 생각하는데 씨앗이 제게 말을 건네 오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속으로 타서 익어 까맣게 영근 기쁨이라고….

참으로 무더운 여름이 지나니 하늘이 맑고 푸른 가을이 오고, 한가위 명절을 맞게 되네요. “우리나라 가을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말로써 설명이 안 되네요”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 요즘입니다.

가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승객들이 저마다 가족에게 손 전화를 걸어 잘 출발했다든가 언제쯤 도착할 것이라는 등 열심히 보고하는 모습을 봅니다. 집을 떠나도 마음만은 늘 결속되어 있는 가족, 눈빛만 보아도 이름만 불러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가족, 그리고 그리움의 감정을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사랑의 학교인 ‘우리 집’을 향한 발걸음을 서두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설레고 흐뭇합니다.

아무리 다른 이와 잘 지내더라도 가족과 잘 지내지 못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쓸쓸하고 평화가 없는 것을 여러분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 땐 가족도 다 소용없어!’가 아니라 ‘역시 가족이 최고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기에 그만큼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게 가족이니 더욱 성실하고 겸손하게 노력하는 수련생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번 추석엔 가을하늘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모처럼 마음먹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지만 끝까지 들어주지 않아 실망하며 외로워했던 마음까지 치유될 수 있도록 내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어주십시오.

‘너는 참 소중하다’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가 듣고 싶어 때로는 방황하며 나이에 안 맞는 유치한 반항도 서슴지 않는 가족에게 부정적이며 윽박지르는 말이 아닌 따뜻한 말로 힘이 돼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누구하고 어떤 일로 서먹한 관계가 되어 불편하다면 이번 기회에 슬그머니 웃으며 화해하고 둥근 보름달이 뿜어내는 달빛처럼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는 순하고 너그러운 ‘달빛 사람’이 되시라고 기원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끼니를 걱정하고 머물 곳이 없어 몸과 맘이 춥고 외로운 이웃을 위해 가족회의를 해서라도 말로만 아닌 구체적 도움의 손길을 펴는 ‘우리 가족’ ‘세계 가족’으로 사랑도 넓혀 가셨으면 합니다. 마침내 온 세상이 사랑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구별이 대자연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진정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자비심과 연민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세상입니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어떤 청년이 보상금 1000만 원을 받아 500만 원은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고 500만 원은 형편이 딱한 가해자의 집에 도로 갖다 주었다는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찡한 감동으로 적셔 줍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아들이 노모를 바닷가 모래사장에 내다 버려 파도에 휩쓸려 죽게 한 비정한 일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노모가 파도에 쓸려 가며 비참했을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 저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힘들고 귀찮다고 포기하거나 내다 버리는 것은 참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때로 달콤한 휴식 아닌 쓰디쓴 노고를 요구하더라도 ‘나의 가족이니까’ ‘나의 이웃이니까’ ‘또 하나의 나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다시 사랑의 먼 길을 가야 하겠지요?

이렇게 역사적인 민족 대이동의 명절에 집을 향해 움직이는 여러분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는 ‘수도 가족’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라고 전하며 시 한 편 읊어 드립니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좀 더 둥글어지기를/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하늘보다 내 마음에/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달빛기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