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낙하산 사장 파문’ EBS 뭐가 문제인가

  • 입력 2006년 9월 27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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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는 과외 방송인가, 사회(평생)교육 채널인가.

교육인적자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지낸 구관서 씨가 사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을 계기로 교육방송인 EBS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구 사장은 19일 임명장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노조원들의 반대로 출근을 못 하고 있다. EBS 팀장 41명 전원은 25일 보직을 사퇴하며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EBS 구성원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구 사장의 박사학위 논문 취득과 관련된 의혹 때문만은 아니다. 2000년 교육부에서 공사로 독립한 EBS의 수장에 방송 경력이 없는 교육부 관료 출신을 임명한 것은 정부가 EBS를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교육정책을 홍보하는 ‘관영 방송’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교육 대책에 멍든 EBS=유아 프로그램 ‘방귀대장 뿡뿡이’, 공연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 문화사를 다룬 드라마 ‘명동백작’, ‘국제 다큐 페스티벌’ 등은 EBS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EBS 구성원은 이처럼 지상파 방송과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평생교육 채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2004년 ‘2·17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수능 방송을 강화하고 “EBS 수능 교재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EBS는 과외 방송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수능 방송을 명목으로 정부가 EBS에 지원한 보조금은 2003년 30억 원에서 2004년 199억 원, 2005년 123억 원으로 늘었다. 교재 출판 수입도 2003년 213억 원에서 2004년 이후 600억 원대로 급증했다.

수신료와 방송발전기금 등 공공 재원의 비중이 20%대로 떨어진 반면 교재 출판 수입의 비중은 40% 안팎으로 제1의 재원이 됐다. 급기야 감사원은 올해 6월 EBS가 수능 교재 판매에서 폭리를 취하는 등 방만 경영을 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가 부풀려졌다는 항변도 있지만 EBS 내부에서는 “수능 방송의 이익에 눈이 멀어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기반이 무너지는 줄 몰랐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EBS를 어떻게 해야 하나=EBS 구성원은 수능 방송 강화에 이어 교육부 관료 출신 사장의 취임으로 EBS의 위상이 학교교육의 보완재로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추덕담 노조위원장은 “교육부 관료를 낙하산으로 임명한 이유는 참여정부의 최대 치적인 EBS 수능 사업을 보호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형건 국제 다큐 사무국장은 “교육부 산하 기관이던 시절 공무원들이 인터뷰 질문도 고칠 정도로 편성에 관여했다”며 “교육부 관료 출신이 사장이 되면 교육정책 홍보용 토론이나 다큐멘터리 제작 지시가 쏟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태진 연세대 영상대학원 부원장은 “EBS는 평생교육, 교양 채널로 나아가야지 정규교육을 보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며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장 인사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방송위원인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부 예산으로 과외 방송을 하는 것은 EBS에도 바람직하지 못하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EBS의 운영 방향과 재원 확보 방안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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