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던 여인 고현정…‘해변의 여인’으로 스크린 첫발

  • 입력 200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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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여러분에게 보여 드릴 뿐 스스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하는 고현정. 그래서 그를 ‘타고난 배우’라고 하는 걸까. 전영한 기자
“내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여러분에게 보여 드릴 뿐 스스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고 말하는 고현정. 그래서 그를 ‘타고난 배우’라고 하는 걸까. 전영한 기자
1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고현정은 드라마(MBC ‘여우야 뭐하니’)를 위해 트레이드마크였던 긴 생머리를 싹둑 단발로 자른 모습이었다. 산뜻했다.

“한 6년 만에 처음 잘랐다”고 했다. 만년 생머리가 어울릴 것 같은 앳된 얼굴. “사실은 스무 살 때부터 흰머리가 있었어요. 내림인가 봐요. 아버지는 완전히 하얘요. 전 촬영도 해야 되니까 보이는 앞쪽 흰머리는 다 뽑았는데 안에는 완전 수두룩해요.”

31일 개봉하는 그의 첫 영화 ‘해변의 여인’(감독 홍상수)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했다.

“홍 감독님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부터 다 봤죠. 홍 감독님 영화 중엔 ‘돼지…’가 제일 좋고. ‘생활의 발견’도 재밌게 봤어요.”

‘해변의 여인’은 아직 시사회 전이지만 먼저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은 “홍상수의 자기 복제가 여전하다”와 “스타일이 확고한 가운데 표현이 순화됐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고현정의 연기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후한 점수를 줬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그런데 어떻게 보면 뻔한 여자를 잘 표현했다” “역시 고현정이다. 술 먹으며 넋두리하는 모습에 원숙한 느낌도 묻어났다”….

‘홍상수 영화’에는 술 먹는 장면이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배우의 ‘리얼’한 연기와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 진짜 술을 먹이고 촬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못 마시진 않아요. 제 주량은 소주 1병쯤? 감독님이 ‘술 안 먹고도 (감정이) 좋다’고 하셔서 전 별로 안 마셨어요. 후반부 횟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제가 마시겠다고 나섰죠. 그때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누가 대신 잔에 물을 채워 줬더니 제가 다시 소주를 달라고 했대요.(웃음)”

김형구 촬영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고현정 씨가 촬영 도중 쉬는 시간에 갑자기 스태프들에게 다가오더니 배시시 웃으며 ‘너 예쁘다’ ‘자긴 왜 그래?’ 하며 안 하던 행동을 하더라. ‘취했나?’ 싶었는데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니 멀쩡하게 연기했다. 진짜 배우라고 생각했다. 근데 다음 날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 못 했다.”

홍 감독 영화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전국 28만 명)가 최고 흥행작이고 작년 ‘극장전’의 관객은 겨우 4만 명. 그러나 이번엔 ‘고현정 효과’에 홍 감독 영화 최초로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아 흥행 여부도 관심거리다.

이 영화에는 베드신도 있고 키스신도 있지만 노출은 거의 없다. 그의 베드신도 옷을 입은 채로 또는 이불을 덮어쓴 채 이루어진다.

“베드신은 여러 버전으로 찍었는데 가장 수위가 낮은 걸로 나가나 봐요. 그게 느낌이 제일 자연스러웠다고. 가장 ‘센’ 버전요? 음, 김승우 씨는 일단 ‘공사’(주요 부위를 살색 테이프로 가리는 일)를 했고요, 저는 등이 나오는 정도였죠.”

사실 연기를 안 해도 충분히 잘 살 것 같은 그가 왜 연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괜한 구설수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그게 편할 것 같은데.

“저에게 소중했던 부분을 대체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는 정말 위로가 되죠. 전 일하는 게 좋아요. 남들 눈에 풍족하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죽기 전 가장 행복했던 한 가지 기억만 가지고 저세상으로 간다는 내용. 그가 영원히 가져가고 싶은 단 한 가지 기억은 무엇일까?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건 너무 당연해요”라고 내뱉는 그의 눈에, 정말 1초도 안 돼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들과 함께 있던 때죠.” 티슈를 뽑아 건넸다. 그는 티슈로 눈가를 닦으며 일부러 가볍게 웃었다. “에이 참, 이게 웬 청승이죠.”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언제로 되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미스코리아에 나가기 전”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미스코리아에 안 나갈 것 같아요. 한번 이런 인생을 살아봤으니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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