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3년 존 F 케네디 탑승 함정침몰

  • 입력 200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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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 귀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에 섰던 순간에도 침착했고 웃음을 잃지 않았으니까요.”(나우루 섬 주민 비우쿠 가자)

1961년 취임 직후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이같이 쓰인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읽고 감회에 젖은 그의 눈은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코코넛 껍데기로 향했다.

‘나우루 섬. 부대원 11명 생존. 원주민이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음.’

제2차 세계대전 때 그가 코코넛 껍데기에 새겼던 절박한 구조 메시지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바로 이 메시지를 아군에게 전해준 원주민이었다.

1943년 8월 2일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 경계 임무를 담당하던 미군 어뢰정 PT 109가 일본 구축함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망망대해에 던져진 미군 병사들의 필사적인 생존 노력이 시작됐다.

PT 109의 지휘관은 당시 26세의 케네디 중위. 전 주영 미국 대사의 아들이자 수백만 달러를 상속받기로 되어 있는 갑부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야심이 있어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케네디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인근 섬으로 헤엄쳐 가기로 했다. 그는 부상한 부하를 묶은 후 그 끈을 입에 물고 앞장섰다. 입 속으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바닷물을 내뱉으며 15시간이나 헤엄쳤다.

섬에 닿았지만 막막했다. 부대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제력을 잃은 상태였다. 팀워크를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케네디는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며 그들을 격려했다.

식량을 찾아 여러 섬을 옮겨 다니던 케네디 일행은 나우루 섬에서 원주민과 마주쳤다. 케네디는 메시지를 새긴 코코넛 껍데기를 건네주며 미군 기지에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메시지는 인근을 지나던 뉴질랜드 군함에 전달됐다. 케네디와 부대원들은 엿새 만에 구조됐다.

케네디는 전쟁 영웅이 됐다. 이후 그는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지만 조난 때 크게 다친 후유증 때문에 평생 진통제에 의지하며 살았다.

다시 1961년 백악관 집무실. 케네디 대통령은 원주민에게 답장을 보냈다.

“저는 힘들 때면 항상 그때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용기가 생깁니다. 저는 그 경험을 통해 ‘위험을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배웠습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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