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지 않으면 방송불가…누리꾼 5명이 만든 ‘생쇼 방송국’

  • 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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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떠들고 실수하는 모습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내보내며 즐거워하는 BJ들. 뒤에 나오는 방송사 로고 SSBS는 ‘생쇼방송국’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왼쪽부터 남경표 안미선 박예지 씨. 변영욱  기자
웃고 떠들고 실수하는 모습을 인터넷 생방송으로 내보내며 즐거워하는 BJ들. 뒤에 나오는 방송사 로고 SSBS는 ‘생쇼방송국’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왼쪽부터 남경표 안미선 박예지 씨. 변영욱 기자
“안녕하세요. BJ(Broadcasting Jockey·방송 자키) 경표 인사드립니다. 와, 시청자 수가 230명을 넘었네요.”

“오빠 얼굴에 화색 도는 것 좀 봐.”

화상 캠코더 앞에 앉은 남경표(27·경민대 연극뮤지컬학과 4학년) 씨. 컴퓨터 모니터에 뜬 시청자 수를 확인하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남 씨를 지켜보던 후배 BJ 안미선(26·초등학교 뮤지컬 강사) 박예지(23·카페 종업원) 씨의 표정도 밝아졌다.

방송 경험이 없는 이들은 ‘생쇼 방송국’ 직원이다. 본업을 마친 뒤 집에서 개인용 컴퓨터(PC)와 화상 캠코더만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재미삼아 방송하던 누리꾼 5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생방송 인터넷 사이트다.

광고 회사를 운영하는 방호석(32) 씨가 방송국장, 방송 장비는 PC 2대와 핸디캠과 화상캠, 마이크 2개가 전부. BJ들의 집이나 방 씨의 사무실이 스튜디오다.

월평균 시청자 수는 생방송이 7만 명, 인터넷 다시 보기로 시청하는 수는 20만 명 정도.

이들은 포털들이 미래 인터넷의 핵심 콘텐츠라고 주목하고 있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User-Created Contents) 열풍의 주인공들이다. 24일 오후 생쇼 방송국의 생방송 현장을 찾았다.

○ 각본 없는 실시간 상호작용

올여름 화제의 개봉작인 영화 ‘괴물’ 특집으로 방송이 시작됐다. UCC의 마케팅 능력에 주목한 영화사에서 홍보를 부탁해 와 남 씨와 안 씨의 진행으로 특별 편성한 프로그램이다. 특별히 대본이랄 게 없으니 진행자들의 실수도 잦다.

“봉준호 감독님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남 씨)

“어, 잘 모르는데요. 봉태규 씨 형 아닌가요.”(안 씨)

진행자들의 빈틈은 인터넷 모니터 옆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채팅글이 메워 준다. 누리꾼들의 실시간 참여는 방송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영화를 소개하던 두 사람이 괴물 가면을 써 보이자 “안 쓰는 게 더 무섭다”는 ‘악플성 댓글’이 올라와 웃음바다가 됐다.

‘괴물’ 특집 이후 이어진 ‘좋은댓글운동본부’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댓글을 소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이날 주제는 ‘성 대결로 번진 스타벅스 논쟁’.

“여자들 미니 홈피에는 갈비탕 먹고 찍은 사진은 없어도 스타벅스에서 찍은 사진은 반드시 등장한다.” “신문은 안 보면서 스타벅스에서는 꼭 잡지를 보는 척한다.”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성 댓글을 소개하자 시청자 채팅창에는 “스타벅스 종이컵 멋으로 들고 다니는 것 맞다” “취향의 차이일 뿐이다” 등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 ‘싸이 세대’서 진화한 인터넷 미래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생’으로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소소한 개인적 일상을 공개하는 ‘싸이월드 세대’보다 진화한 세대로 해석된다.

‘메이드 카페’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에서 메이드 복장으로 신청곡을 틀어 주는 박 씨는 “미니 홈피에서 잘 나온 사진을 올리는 것보다 생방송에서 어리바리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업자들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상업적 잠재력에 주목하지만 UCC를 바로 상업성으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스로를 많이 노출할수록 상상의 여지가 줄어들어 내공이나 스타성이 뛰어나지 않으면 엽기나 독특한 행동만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전망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UCC:

사용자 제작 콘텐츠(User-Created Contents)의 머리글자로 누리꾼들이 직접 제작한 동영상을 말한다. 동영상 제작 기술의 대중화에 따라 누리꾼들이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정보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상당수의 UCC는 기존 CF나 방송 프로그램을 편집한 뒤 약간의 가공을 거쳐 생산돼 저작권 침해 논란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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