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대사로 읽는 ‘한반도’ 흥행전략

  • 입력 2006년 7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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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반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영화 ‘한반도’. 동아일보 자료 사진
13일 개봉된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가 18일까지 엿새 동안 전국 관객 178만 명(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집계)을 끌어들였다. 이는 ‘흥행 귀재 강우석’이라는 브랜드 파워에다 국내 총 스크린 수의 3분의 1에 이르는 스크린(520개)을 확보한 막강한 배급력에 기댄 바 있으나, 일단 이 영화의 전략적 노림수가 일정 부분 관객들에게 먹혀들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한반도’는 개봉 전 영화평론가와 기자들로부터 “감상적 민족주의” “지루하다” “단순한 선악 구분”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비판의 도마에 오른 ‘한반도’의 이런 요소들은 따지고 보면, 강 감독이 ‘한국의 평균 관객’을 공략하기 위해 심어 놓은 상업적 노림수이기도 하다. 영화 ‘한반도’를 중심으로, ‘실미도’ 이후 공고화되고 있는 강 감독의 새로운 흥행전략을 분석해봤다. 이름 하여, ‘강우석식 포퓰리즘’의 실체라고 할까.

①집단정서를 건드린다=국내에서 한일 문제는 이성보단 감정이 앞서는 대목. ‘한반도’는 ‘자주파’인 대통령(안성기)에 반대하는 ‘동맹파’ 국무총리(문성근)의 입을 빌려 한국인(관객)을 업신여기는 발언들을 늘어놓는다. 공분(公憤)을 자아내는 것.

“정말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밥 먹고 살게 된 것 같은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미국과 일본이 빠져나가면 우리는 북한과 똑같이 비참해지는 데 10년도 안 걸려. 그런데도 미국 일본 중국 모두가 반대하는 통일을 해서 형제끼리 손잡고 앉아 굶어 죽자는 얘기야?”(총리)

관객의 자존심에 의도적으로 생채기를 내어 ‘열 받게’ 만듦으로써 관객이 영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서는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되기를 노리는 것.

“진심을 알아달라고 하기에는 우리 국민들이 너무 과격하고 또 감정적인 측면이 강합니다.”(총리)

“혹여 국민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진다면 두드려 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 주는 게 지도자의 일이지.”(원로)

한국인의 감정적인 측면을 들춰내 공격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관객의 감정적인 측면을 이용하는 이율배반적인 테크닉이다.

②관객을 대신해 외친다=한참 관객을 열 받게 만든 뒤 대통령의 입을 통해 상대를 비판하거나 욕함으로써 관객의 심정을 대신해 울분을 토해낸다. 윤리 교과서 스타일의 웅변조 대사가 많은 것도 이 때문.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다분히 ‘주입식’이다.

“진실을 덮어버린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원만한 해결이 아니라 비겁한 타협입니다.”(‘실미도’의 유명한 대사 “비겁한 변명입니다”에 이은 2탄)

“대한제국 주권의 상징이었던 국새를 찾아주십시오. 100년에 걸쳐 우리의 주권을 침해했고 또다시 침해하려는 일본을 세계의 법정에 세우겠습니다. 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외상이 좀도둑처럼 아무도 몰래 찾아 들어와 협박을 하는 건 어느 나라 외교법입니까?”

“나는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이 사태에 대해 민족의 자긍심을 지켜 나가는 선택을 할 작정입니다.”

③떠먹여 주듯 설명한다=‘고종 황제가 남긴 진짜 국새’를 둘러싼 사건을 담은 ‘한반도’는 관객이 헷갈려하는 ‘국새’ ‘옥새’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문화재 도굴꾼인 유식의 대사를 통해 마치 사전의 설명을 읽듯 알기 쉽게 깨우쳐 준다. 지루할 수 있지만, 눈높이를 낮춤으로써 관객의 학습효과를 높인다.

“음! 국새는 나라에서 쓰는 도장이네. 옥새라고 그러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재질이 옥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거고. 대한제국이 생기고 나서 만든 국새들은 순금 재질이니까, 배운 사람들은 옥새가 아니라 국새라고 해야 되는 걸세.”(유식)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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