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회 길거리공연‘낭만가객’…3인조 밴드 ‘캐비닛 싱얼롱스’

  • 입력 2006년 7월 12일 1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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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앨범 ‘리틀 팡파르’를 발표한 3인조 길거리 밴드 ‘캐비닛 싱얼롱스’. 왼쪽부터 김목인(기타) 차지은(아코디언) 김태형(트롬본). 김동주 기자
첫 앨범 ‘리틀 팡파르’를 발표한 3인조 길거리 밴드 ‘캐비닛 싱얼롱스’. 왼쪽부터 김목인(기타) 차지은(아코디언) 김태형(트롬본). 김동주 기자
●On the road #1… 우연, 그리고 낭만

길 떠나는 세 명의 청년들에게 물었다. 길이 무엇인지를. '집시'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우연 같은 공간이죠. 약속도 하지 않은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또 지나치고… 천 만 가지의 우연이 일어나는 곳, 낭만적이지 않나요?"(차지은)

이들을 만난 건 11일 오전 서울 홍대 앞 놀이터. 3인조 거리 밴드 '캐비닛 싱얼롱스(Cabinet Singalongs)'라고 소개한 이들은 기타와 아코디언, 트롬본을 주섬주섬 꺼내 연주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 했다.

"밴드 결성 후 2년 동안 140회 넘게 길거리 공연을 했어요. 서울 정동극장부터 경상남도 산청 시골 마을까지 모두가 우리의 무대였죠. "쟤네 뭐야" 같은 호기심부터 비판, 찬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오죠. 왠지 '스릴'있어 보이지 않나요?"(김목인)

길 바닥에 앉아 이들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기타와 보컬을 맡은 김목인(28), 아코디언과 보컬의 차지은(28·여), 그리고 트롬본 연주자 김태형(23)이 만난 곳도 다름 아닌 홍대 앞 길이었다. 팀 이름도 길에서 만난 아저씨가 "당신들의 연주를 들으니 예전에 내가 자주가던 '싱얼롱 카페'가 생각난다"고 말한 것에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이다.

"옛날 같으면 '거리의 악사'나 '약장수' 취급 받았을텐데 시대를 잘 타고 났죠. 하지만 '우리 가게 시끄럽다'며 딴 데 가라는 가게 주인 아줌마나 '이런 거 하고 밥은 먹고 살아요?'라고 묻는 교복 입은 10대들도 있죠."(김태형)

●On the road #2… 일상을 담은 폴카 한 자락

이들이 앨범을 내밀었다. '리틀 팡파르'라는 제목의 앨범은 밴드 결성 3년 만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데뷔 앨범이란다. 놀랍게도 작사, 작곡, 편곡, 심지어 앨범 재킷까지 모두 손수 만들었다. '뜨내기' 가객(歌客)은 아닌 듯 했다.

"왜 가요는 사랑 얘기가 아니면 안 될까요? 그저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길에서 경험한 일상이 주제가 될 순 없을까요? 길동무가 얘기하듯 편한 마음으로 앨범을 만들었죠."(차지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지새웠던 데뷔 초와 달리 변해버린 지금의 모습을 노래하는 타이틀 곡 '그해 봄 터미널 벤치'부터 러시아 사할린 공연 때 친구로부터 "사람들은 만족할 줄을 몰라"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우리는 늘 만족을 모르죠'. 홍대 클럽에서 한 친구가 시끄러운 음악을 피하기 위해 귀마개를 한 것을 보고 만든 '귀마개가 필요한 밤' 등 수록된 15곡 모두 지극히 시시콜콜한 이야기. 그러나 폴카부터 스윙, 왈츠,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로 버무려진 이들의 음악은 새롭고 경쾌하다. '소몰이 창법'에 길들여진 한국 가요계에 산소 호흡기를 귀에 가져다 댄 듯한 느낌이다.

"우리에게 '왜 사서 고생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음악을 좋아하는 행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고생'은 '보람'이 된답니다."(김목인)

피 끓는 청춘을 참지 못해 길로 뛰쳐나온 '캐비닛 싱얼롱스'. 얘기를 듣다보니 어느 덧 시간이 1시간 넘게 흘렀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싸고 길을 떠나려는 세 명의 청년들.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체가 무엇인지를. 낭만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요? 늘 재미있는 일을 꾸미는 거리의 악사죠!"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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