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4년 첫장편영화 ‘국가의 탄생’ 크랭크인

  • 입력 2006년 7월 4일 0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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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7월 4일 역사상 첫 장편영화인 ‘국가의 탄생’의 촬영이 시작됐다.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1875∼1948)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국가의 탄생’이 영화사의 첫 장(章)에 자리한 중요한 영화로 자리 잡은 데는 그리피스의 뛰어난 영화 감각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20대 내내 배우로, 극작가로 연극판에서 활동했지만 큰 명성을 얻진 못했다. 1908년 바이오그래프 영화사에 들어가면서 그리피스의 영화 인생이 시작됐다. 그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데 흥미가 있어 단편영화를 450편이나 제작했다. 그러나 그가 더욱 적극적인 흥미를 느낀 것은 장편영화였다. 극장용 장편영화를 만들면 ‘장사가 되겠다’고 판단한 것. 그렇지만 바이오그래프사는 “장편영화는 관객의 눈을 피로하게 한다”며 제작을 반대했다. 그래서 그리피스는 직접 영화사를 차렸다.

‘국가의 탄생’은 그리피스 영화사의 첫 작품이다. 영화사상 첫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1915년 2월 개봉된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관람료가 5∼10센트였는데 영화 표를 무려 2달러에 팔았다. 당시 러닝타임은 20분 정도였는데, ‘국가의 탄생’은 159분이나 됐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줄을 섰다. ‘국가의 탄생’은 영화 국가로서 미국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 되었다.

‘국가의 탄생’은 그전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클로즈업이나 교차편집 등을 선보여 영화 기법 면에서 선구적인 작품으로 불린다. 문제는 놀라울 정도로 편협한 내용이다. 남북전쟁 중 백인 여자가 자신을 겁탈하려는 흑인 병사를 피하려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여자의 오빠가 KKK단의 리더가 돼서 북부 주정부를 공격한다는 것. 영화 속에서 주정부군이 인질로 잡은 백인을 KKK단이 구출하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그려지는 등 인종 문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개봉을 앞두고 인권단체의 상영 반대 시위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영화 내용을 두고 쏟아지는 비난에 항변하고자 그리피스는 이듬해 매우 예술적인 영화 ‘인톨러런스(Intolerance)’를 만들었다. 20세기 초 미국, 16세기 유럽 종교개혁, 예수가 살던 때, 고대 바빌론이 한꺼번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복잡한 영화를 통해, 자신에게 쏟아진 ‘아량 없음’이 역사적으로 반복돼 왔음을 주장하고자 했던 것. 이후 몇 편의 장편을 더 만들었지만 ‘국가의 탄생’만큼 인기를 모으진 못했다. 그리피스는 말년에 호텔 방에 틀어박혀 혼자 지내다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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