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했죠 우리가 베토벤을 연주하다니!”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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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동 지하철 교대역 부근의 한 연습실에 모인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 이들은 “음악은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가정과 직장생활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활력소”라고 입을 모은다. 김동주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지하철 교대역 부근의 한 연습실에 모인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 이들은 “음악은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가정과 직장생활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활력소”라고 입을 모은다. 김동주 기자

《“목요일 밤이면 꼭 이곳에 와요.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손가락을 풀 때면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가지요.”(신지영·26·뮌헨재보험 직원) 25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지하철 교대역 부근의 한 연습실. 정장 차림인 남녀 직장인들이 하나 둘씩 악기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악기를 조율하는 소란스러움도 잠시. 지휘봉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브람스의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선율이 곱창구이집이 즐비한 도심 뒷골목에 울려 퍼졌다.》

이들은 2002년 창단연주회를 한 직장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의 벤처와 정보기술(IT) 관련 기업, 금융권 직장인들이 주축이어서 이름도 ‘테헤란밸리 오케스트라’라고 붙였다. 지금은 다양한 직업군의 단원 1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처음엔 회사에 첼로를 들고 가기가 눈치 보였어요. 그런데 1년 뒤 콘서트홀에서 음악회를 열어 동료들을 초청하니 정말 부러워하더군요. 연주는 일과는 또 다른 긴장을 주지만 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즐거운 스트레스입니다.”(박정환·36·명인이노베이션 기술영업부 과장)


단원의 90% 이상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레슨을 받는 초보 단원들을 제외한 정규 단원들은 월 4만 원의 회비를 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40명) ‘윈드 오케스트라’(30명) ‘스트링 오케스트라’(30명) 등에 소속돼 연습한다. 봄, 가을에 한 번씩 여는 정기연주회 때는 연습실 인근의 한전아트센터, 서초구민회관 무대에 올라 베토벤의 3, 5, 6, 7번 교향곡이나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첼로 연주자 8명은 모든 첼리스트의 꿈인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하기 위해 공부하는 ‘바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악장을 맡고 있는 박신전(35·인터소사이어티 대표) 씨는 “한 곡을 6개월간 연습해 무대에 올리는 거북 걸음 같은 일정이지만 단원들이 소리를 맞춰 가며 곡을 완성해 나가는 희열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때로 가족 간의 화목이나 일에도 도움을 준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신덕현(39) 씨와 첼리스트 홍성은(34) 씨는 부부 단원이다. 신 씨는 “나 혼자 하면 아내가 집에서 빨리 들어오라고 바가지를 긁었을 텐데, 연습부터 뒤풀이까지 둘이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초대 단장을 맡았던 이준표(39·우리은행 PB) 씨는 고객을 초청해 바이올린, 팬플루트 독주회를 여는 ‘아트마케팅’으로 일과 음악을 접목하고 있다.

그는 “VIP 고객을 대상으로 재테크 설명회와 음악회를 겸하는 ‘노블레스 콘서트’를 열어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 교수는 “일본의 경우 전국에 총 1만여 개가 넘는 아마추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브라스밴드가 있고 이들이 매년 경연을 벌이는 전국대회의 열기는 고시엔(甲子園) 야구대회보다 뜨겁다”며 “일본의 클래식 공연장이 늘 80% 이상의 유료 관객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든든하게 저변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동영상보기 :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제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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