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7년 소설 ‘드라큘라’ 출간

  • 입력 2006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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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5월 26일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1847∼1912)의 소설 ‘드라큘라’가 영국 런던에서 출간됐다. 당시 스토커의 직업은 배우 매니저. 숭배해 마지않던 ‘햄릿’ 전문배우 헨리 어빙의 매니저로 열심히 일하던 중이었다.

책은 인기가 있었지만 그는 매니저 일을 아주 좋아해 전업 작가로 나서지 않고 매니저를 계속했다(얼마나 열심이었던지 어빙이 숨졌을 때는 충격으로 실명 위기에 빠졌을 정도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훗날 ‘현대에 창조된 유일한 신화’(앙드레 말로)라는 찬사를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책은 당시 유럽을 떠돌던 흡혈귀 전설을 바탕으로 쓰였다. 주인공 드라큘라 백작이 15세기 동유럽의 잔인한 영주 블라드 체페슈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체페슈의 아버지가 ‘용·dracul’ 작위를 받았고, 여기에 ‘…의 아들’을 뜻하는 루마니아어 조사 ‘a’가 붙어 체페슈는 드라큘라로 불렸다).

엄격성이 짓누르던 빅토리아 시대에 환상적인 이야기는 억눌린 정신의 해방구였고, ‘드라큘라’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였다. 주인공 흡혈귀가 밤에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행위는 극도로 도덕적이었던 당시 분위기와 대비된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끝없이 재해석되고 변주된다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에 걸쳐 ‘드라큘라’는 수백 번 연극무대에 올려졌고 영화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흡혈귀 영화의 고전으로 추앙받는 ‘노스페라투’부터 첨단 무기로 흡혈귀를 잡는 액션영화 ‘블레이드’에 이르기까지 드라큘라는 수없이 다양한 얼굴로 대중과 만났다.

처음엔 그저 몬스터로만 받아들여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캐릭터에는 철학적 문학적인 의미가 덧입혀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슬픈 운명을 가진, 또는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한 매혹적인 대상이 된 것이다. 피를 빠는 행위에서 성애(性愛)를 연상한 것도 중요한 예술적 모티브였다. 피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나온 영화나 소설에서는 드라큘라가 에이즈의 공포를 상징하기도 했다. 시대에 따라 새롭게 읽혀지는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에도 ‘드라큘라’(열린책들)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와 있다. 소설 중에는 “자네 알잖나, 우리가 오래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귀었던 잭 수어드 말이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스토커가 우리나라를 얼마나 잘 알았는지는 몰라도, 100여 년 전 영국 소설에 ‘조선’이 등장하는 것은 흥미롭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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