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죽을 준비 되셨나요”… ‘죽음과 함께 춤을’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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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 토머스 롤런드슨의 ‘죽음의 춤’. 사진 제공 마고북스
영국 화가 토머스 롤런드슨의 ‘죽음의 춤’. 사진 제공 마고북스
◇ 죽음과 함께 춤을/베르트 케이제르 지음·오혜경 옮김/440쪽·1만3000원·마고북스

나는 독극물을 가지고 율즈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에 들어서면서도 그가 의식을 잃는 순간이 또다시 두려워졌다. 나는 천천히 액체를 잔에 따랐다. “율즈, 준비되었나요?” “네….”

나는 묘한 불안감을 느끼며 다시 물었다. “준비됐지요?”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말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알지 못할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료 의사가 어느 노부인의 안락사를 돕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녀는 삶의 마감을 준비했지만 마지막 며칠 사이에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죽던 날 의사의 방문을 받고 크게 당황해했다. “그런데 선생님, 웬일이시죠?”

그는 그녀의 기억을 상기시켜 주었고, 그날 저녁 그녀는 결국 약을 마셨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의사는 그녀의 딸에게 물었다. “이게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것 맞지요?”

동료 의사의 그 말은 교수형을 집행한 후에 그 사람이 유죄이기를 바란다는 판사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안락사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요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의 비망록이다. 삶의 가장자리를 서성이는 환자들을 돌보고 때로는 직접 안락사를 실행하기도 하면서 일상적으로 접해온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의료 행위의 가장 놀라운 면은 그토록 많은 환자가 죽어간다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저자. 그는 육신이 썩어가는 죽음의 실상을 ‘날것’ 그대로 들이댄다. 삶에 있어서 가장 거대한 사실인 죽음을 있는 그대로, 거북스러울 만큼 고집스럽게 보여 준다.

의사에게 안락사는 외면할 수만도 없는 독배(毒杯)와 같은 것인지 모른다. 위엄 있는 육체의 해방이라는 환자의 요구와 의사의 윤리적 딜레마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죽음에 대해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현대의학의 가장 취약한 분야다. 안락사를 앞두고 있는 환자가 자신의 죽음 후에 남게 될 의사와 간호사를 위해 정성스럽게 포도주를 준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가슴이 서늘할 뿐이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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