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3년 양키스타디움 첫 경기

  • 입력 2006년 4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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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4월 18일 미국 뉴욕의 양키스타디움에서 개장 후 첫 경기가 열렸다.

7만4000명의 관중이 꽉 들어찬 가운데 뉴욕 양키스의 간판타자 베이브 루스가 타석에 섰다.

‘딱’ 소리와 함께 타구는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3점 홈런. 양키스의 4-1 승리였다. 자신을 쫓아내다시피 한 ‘친정팀’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한 승리였기에 더욱 짜릿한 결승 홈런이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양키스는 별 볼일 없는 팀이었다. 전용구장도 없었다. 또 다른 뉴욕 연고팀인 자이언츠의 전용구장 폴로그라운드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신세였다.

1920년 양키스는 레드삭스에서 루스를 영입했다. 그의 호쾌한 타격을 보려는 관중으로 양키스 경기는 연일 초만원을 이뤘다. 양키스 관중이 급증하자 자존심이 상한 자이언츠는 양키스에 폴로그라운드에서 나가 줄 것을 요구했다.

양키스 구단은 새 구장을 짓기로 했다. 공사가 초고속으로 진행되면서 시공 284일 만에 7만 명 이상이 입장할 수 있는 초대형 야구장이 들어섰다. 야구장이 ‘파크’ ‘필드’ ‘그라운드’로 불리던 시절 양키스는 ‘스타디움’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양키스타디움은 3층짜리 관중석에 육상 트랙까지 갖출 정도로 규모가 방대했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사비(250만 달러)는 루스 덕분에 늘어난 입장 수입으로 조달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양키스타디움은 ‘루스가 지은 집(The House that Ruth Built)’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루스의 인기는 구장의 형태까지 바꿔 놓았다. 양키스는 좌타자 루스가 좀 더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도록 우중간 펜스는 90m도 안 되게 짧게 설계한 반면 좌중간은 140m라는 엄청난 거리에 펜스를 설치했다.

미국 야구계의 전설적 인물들이 양키스타디움을 거쳐 갔다. 루스 외에도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미키 맨틀, 요기 베라, 레지 잭슨 같은 걸출한 선수들이 이곳에서 야구팬들을 열광시켰다.

올해 2월 양키스 구단은 2009년까지 양키스타디움 부근에 새 구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현 구장은 주차장으로 바뀔 예정. 미국 야구의 생생한 역사가 숨쉬는 이곳을 허물 것이 아니라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벌써부터 거세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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