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단 한수에 별이 뜨고 졌다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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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전이 50기를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명승부가 연출됐다. 당대 최고수들이 만들어 낸 각본 없는 드라마는 바둑 팬들을 열광시켰다. 명승부를 벌인 기보를 보면 대국자들의 투지와 고뇌를 느낄 수 있다. 국수전 명승부 중에서 바둑사의 물줄기를 바꾼 베스트 기보 3개를 소개한다.》


▽거인 조남철의 소탐대실▽

김인 5단은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41연승에 승률 90%의 성적을 바탕으로 김 5단은 9년 동안 난공불락이던 조남철 8단의 국수성을 포위했다.

당시 조남철 8단은 43세, 김인 5단은 23세.

종반 초입까지 두 기사가 한 치의 양보 없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막판 스퍼트가 필요한 시점. 백 1로 치받은 수가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수. 조 8단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흑 2로 받아 백 두 점을 잡았다. 하지만 백 3으로 뚫고 나가 흑 진이 무너지면서 차이가 확 벌어졌다. 흑 2는 두 점에 연연하지 말고 3에 둬야 했다. 222수 끝 백 6집반 승.

조 8단은 국후 “언젠가 올 것이 왔다. 나도 이제 공부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실리위주 ‘된장 국수’ 등장▽


조훈현 9단은 1986년 29기에서 국수전 10연패의 대기록을 세우고 승승장구하며 3번째 전관왕에 올랐다. 이때 열린 30기 국수전도 당연히 조 9단이 우승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뜻밖에도 해외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 서봉수 9단이 2연승을 거두며 조 9단을 막판으로 몰아넣었다.

서 9단은 초반 철저한 실리 작전을 폈다. 백 1의 삭감은 당연하고 흑은 2로 뒷문을 단속한다. 백 3으로 보강할 때 흑의 공격 루트가 궁금한 장면.

조 9단은 듣도 보도 못한 수를 들고 나왔다. 흑 4를 본 검토실은 중요한 판에 예상 밖의 수를 둔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조 9단에게 무슨 비책이 있을 것이라며 설왕설래했다. 그러나 백 A, 흑 B, 백 C, 흑 D로 진행되자 백이 쉽게 안정됐다. 285수 끝 백 3집 반 승.

▽돌부처 끝내기 神도 감탄▽


조훈현 9단은 1994년 후지쓰배 동양증권배 등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절정의 컨디션을 보였다. 그는 이 여세를 몰아 국수전으로 진격했다. 조 9단은 1, 2국을 내리 졌으나 3, 4국을 이겨 동률을 만들며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5국은 초반부터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전개됐다. 중앙에서 집을 만든 흑이 유리해 조 9단의 국수 복귀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백이 받아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둔 흑 1이 어이없는 패착. 후수 두 집 정도에 불과한 수였다. 백 2로 막은 것이 반상 최대로 여기서 역전됐다. 283수 끝 백 반집 승. 이 대국은 오전 10시에 시작돼 오후 11시 5분에 끝났다. 여기서 기세가 꺾인 조 9단은 1995년 이어진 4번의 도전기에서 모두 패해 23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50기 우승 영광의 國手는▼

제50기 국수전의 주인은 누가 될까.

우승 1순위로 꼽히는 기사는 49기 국수이자 국내 랭킹 1위인 이창호 9단. 도전자 1명만 상대하면 되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도전자 선출은 어느 때보다도 치열할 전망이다.

국수전은 50기를 맞아 본선 대결 방식을 새롭게 바꿨다.

패자부활전을 가미한 8강 토너먼트 대신 16강 토너먼트로 바꿔 예선 통과의 문호를 넓혔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예선전에선 이미 9명의 본선 진출자가 결정됐고 앞으로 4명을 더 뽑아 본선 시드 3명과 함께 도전자를 가리게 된다. 랭킹 2, 3위인 전 국수 최철한 9단과 이세돌 9단, 윤현석 8단 은 시드를 받아 본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랭킹 4위인 박영훈 9단은 지난해 입단한 김형우 초단의 돌풍을 꺾고 본선에 올랐다.

바둑계에선 이세돌 최철한 박영훈 9단이 도전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한다.

랭킹 10, 11위인 박정상 5단과 원성진 6단도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고 있다. 48, 49기에도 본선에 진출하는 등 유독 국수전에 강한 윤준상 4단도 주목 대상이다.

국수전 본선에 처음 얼굴을 내미는 기사도 적지 않다. 이희성 6단, 김만수 7단, 윤혁 김효곤 4단, 홍기표 2단은 이번에 예선 통과의 기쁨을 맛봤다.

이 밖에 조훈현, 안조영, 목진석 9단 등이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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