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전라도 사투리 현장녹취…‘전라도 우리 탯말’

  • 입력 200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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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우리 탯말/한새암 외 5명 지음/336쪽·1만 원·소금나무

김영랑의 시 ‘오매 단풍들것네’를 ‘어머나 단풍들겠네’로 바꿔 읊어 보자. 어떤 느낌인가. ‘오매’로 시작하는 시구의 짠하고 애잔한 정서적 울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지 않는가.

사투리를 쓰면 세련되지 못한 ‘촌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일반적 정서다. 그러나 저자들은 사투리를 ‘탯말’로 바꿔 부르며 발상의 전환을 하자고 제안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탯말은 사람이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배운 말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의대 연구팀에 따르면 임신부가 72데시벨(dB)로 말할 때 자궁 내에서는 77.2dB로 들리는 것으로 측정됐다. 태아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 배속에서 ‘영혼의 말’인 탯말을 배운다.

저자들은 ‘표준말이 사무적 공용어라면 탯말은 누가 누구인가를, 자기 역사와 내력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누군가가 ‘워따메, 이거이 누구랑가’, ‘니 누꼬? 이 문디이야’ 하고 말했다면 그 말은 듣는 순간 그 사람이 태어난 고향 마을과 나무와 시냇물, 그 지역 공동체의 정서가 함께 환기된다. 그러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말한다면 이 말 속에는 단지 그의 신분을 묻는 사무적 의미밖에 없다. 이처럼 탯말엔 너무나 많은 울림이 들어 있다.”

각 지역의 사투리를 연구하는 ‘탯말두레’ 회원인 저자들은 1년여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 녹취를 해가며 이 책을 썼다. 이후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의 탯말과 관련한 책도 계속 펴낼 예정이다.

이들의 첫 번째 탯말 여행지로 선택된 전라도는 조선시대 가사문학, 판소리의 바탕이 되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 전승문학의 고향이다. 저자들은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문학작품에서 방언이 작품의 리얼리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한다. 또 탯말 예화를 통해 전라도 사투리의 용례, 관련 풍습을 자세히 들려준다.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 중엔 ‘거시기’와 ‘머시기’가 있다. 비슷해 보여도 ‘거시기’는 어떤 묵시적 주제나 소재를 놓고 말하는 것으로 범위가 한정돼 있고, ‘머시기’는 거시기를 포함해 상대가 짐작하기 힘든 그 무엇을 지칭하는, 더 두루뭉술하고 큰 표현이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3장의 탯말 독해. 표준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기발한 묘사가 가득하다.

전라도 출신인 사람도 ‘먼 배가 났는지 짝두시암에 외약 새내키를 쳐놓코 진찬시 쪼빡을 볼븐다(무슨 화가 났는지 펌프샘에 금줄을 쳐 놓고 괜히 바가지를 밟는다)’ 같은 말은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반면 ‘오매 으짠디야, 장깡에 있는 오가리 속에 달이 빠졌어랑(아이고 어쩌나, 장독대에 있는 항아리 속에 달이 빠졌어요)’에는 표준어가 담아내기 어려운 정겨운 정서가 담뿍하다.

익숙한 속담을 탯말로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컨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를 전라도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흐컨 종우떼기도 맞블면 개븝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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