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짐 캐리표’ 코미디… ‘뻔뻔한 딕&제인’

  • 입력 2006년 3월 30일 03시 05분


코멘트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회사원 딕을 통해 자본주의의 탐욕과 부패를 풍자한 영화 ‘뻔뻔한 딕&제인’. 사진 제공 젊은기획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회사원 딕을 통해 자본주의의 탐욕과 부패를 풍자한 영화 ‘뻔뻔한 딕&제인’. 사진 제공 젊은기획
짐 캐리처럼 우리의 오해를 받는 미국 배우도 없다. 짐 캐리 하면 십중팔구 과장된 표정으로 넘어지고 엎어지고 망가지는 모습을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린다.

하지만 짐 캐리가 편당 2000만 달러(약 200억 원) 이상의 출연료를 받는 할리우드 특급 배우인 건 그가 그저 ‘잘 웃기는 배우’여서가 아니다. 가끔 ‘덤 앤 더머’ 같은 화장실 유머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지만, 대부분 그가 보여 주는 웃음에는 소시민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느꼈을 법한 무력감이 아릿하게 배어 있다.

남에겐 찍소리도 못하는 은행원이 어느 날 전설의 가면을 쓰면서 슈퍼파워를 얻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짐 캐리의 출세작 ‘마스크’(1994년)도, 별 볼일 없는 지방 방송국 리포터가 해고된 뒤 비관하다가 창조주로부터 전지전능함을 선물 받는다는 ‘브루스 올마이티’(2003년)도 소시민의 열등감과 꿈이 투영되어 있다. 그가 엉뚱(?)하게도 ‘이터널 선샤인’ 같은 순수 멜로영화에 출연해서도 관객의 눈물을 쏙 빼놓을 수 있었던 건, 그가 페이소스(애상)라는 인간의 원형적 감성을 자극하는 데 능한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30일 개봉되는 짐 캐리 주연의 ‘뻔뻔한 딕&제인(원제 Fun with Dick & Jane)’ 역시 소시민의 쓸쓸한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짐 캐리 표 웃음’의 실체를 알면 더 많이 보이는 영화다. 반면 ‘웃기는 영화’로만 생각한다면, 필요 이상 사회적 발언이 많은 영화로 느낄 수도 있다.

글로버다인이라는 정보통신 업체에서 일하던 홍보 담당자 딕(짐 캐리)은 어느 날 부사장 승진이라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접한다. 어렵게 맞벌이를 하던 아내 제인(티아 레오니)은 회사를 당장 때려치운다. 집 정원에 잔디를 깔고 수영장을 지을 꿈에 부푼 부부. 그러나 알고 보니 글로버다인의 회장 잭(알렉 볼드윈)이 주식을 모두 팔아치우고 도망가기 직전 딕을 희생양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딕은 파산 위기에 몰리고, 급기야 제인과 함께 ‘부부 강도단’으로 변신해 은행을 턴다.

‘뻔뻔한 딕&제인’이 2001년 당시 미국 재계 7위였던 에너지 기업 엔론의 회계 부정 스캔들을 모델로 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영화 속 웃음을 100% 이해하기 위해 알 필요가 있다. 분식회계 끝에 파산해 수많은 투자자를 하루아침에 빈털터리로 만들어버린 엔론 스캔들은 미국 자본주의의 탐욕과 부패를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런 인식은 “우리는 글로벌 세계의 일부분일 뿐이야. 약육강식의 세계 말이지. 미국은 기회의 땅이야” 같은 회장 잭의 직설적인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법대로 성실하게 살다가 당했다”는 주인공 딕의 눈물 섞인 푸념 속에도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루아침에 할 일이 없어진 딕이 기묘한 맨손체조로 하루를 보내거나, 이웃집 잔디를 훔쳐와 자신의 집 정원에 덕지덕지 붙여 놓거나, 아내와 함께 단돈 2달러(약 2000원) 뷔페에서 접시에 에베레스트 산처럼 음식을 쌓아 놓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서 배꼽을 잡고 웃다 보면 왠지 씁쓸한 연민의 뒷맛이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갈수록 현실의 냄새가 더해지는 짐 캐리의 코미디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 준다. 하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코미디의 농도가 옅어지면서 ‘악덕 기업주에 대한 응징’이라는 주제를 대사로 늘어놓는 이 영화는 얼렁뚱땅 문제가 해결되는 손쉬운 클라이맥스를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연애랑 비슷한 걸까? 하고 싶은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꺼낼수록, 더 뜨거워지긴 하지만 그만큼 더 촌스러워진다는 점에서….

‘갤럭시 퀘스트’의 딘 패리섯 감독.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