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제목의 매력! 영화의 매력?…‘여교수의 은밀…’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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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여교수의 사생활을 통해 지식인의 가식과 뻔뻔함을 조롱하는 코미디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사진 제공 필름마케팅 비단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여교수의 사생활을 통해 지식인의 가식과 뻔뻔함을 조롱하는 코미디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사진 제공 필름마케팅 비단
16일 개봉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제목으로 반쯤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성행위 자세를 연상시키는 노골적인 포스터에다 이만 한 제목이면, 관객은 십중팔구 질펀한 ‘침대 놀이’를 상상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물론 영화에는 화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한 노출과 베드신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는 그런 포스터와 제목이 주는 기대를 여지없이 배신한다.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가 아니라 뇌를 굴려 생각해야 하는 영화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한 지방 소도시. 대학 염색과 교수이자 환경단체에서 활약 중인 은숙(문소리)은 주변 남자들의 끊임없는 애정 공세를 즐기며 산다. 은숙은 유부남인 지방방송사 김 PD(박원상)와 은밀한 행각을 거듭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초등학교 교사 유 선생(유승목)의 구애는 영 부담스럽다. 어느 날 같은 대학 만화과 강사로 석규(지진희)가 부임해 온다. 알고 보니 석규는 은숙의 과거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인물. 은숙은 석규의 등장에 난감해한다.

알고 보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란 건 결국 없다.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을 줄로 알았던 은숙의 과거도 까놓고 보면 그리 엄청난 것도 아니다. 실제론 ‘은밀한 매력’이란 게 없는 데도 마치 있는 양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 자체가 이 영화가 진정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다. 은숙 스스로 자신을 매력 덩어리로 착각하며 뽐내고 또 수많은 ‘수컷’들이 그녀에게 뭔가 ‘은밀한’ 매력이 있을 것으로 믿고 떠받드는, 바로 그런 부조리하고 꼴사나운 상황 말이다.

그런 점에서 문소리라는 배우의 캐스팅은 절묘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그녀의 외모는, 알고 보면 별로 특별하지 못한 쪽에 가까운 여교수 은숙이 지방 소도시라는 지리적 환경(혹은 희소가치) 덕분에 특별한 존재인 양 떠받들어지는 상황과도 묘하게 포개어지는 것이다.

교수나 PD 같은 이른바 ‘화이트칼라’들은 육욕에 불타는 속물이고, 환경단체를 이끌며 착한 체하던 은숙도 알고 보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자기모순적인 존재임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지식인의 허위를 비꼬고 냉소한다. 영화는 만취된 상황에서도 결코 ‘S라인’(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몸을 S자로 유지하려 애쓴다)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은숙(아니 문소리)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지켜보면서, ‘뭔가 있어 보이려고 폼을 잡는’ 이 세상 모든 태도들을 조롱할 듯한 기세로까지 치닫는다.

그런데 결정적인 문제는 여기서 잉태된다. ‘욕하다가 닮는다’는 말도 있듯이, 이 영화 스스로 어느새 자신이 그토록 조롱하던 바로 그 대상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영화 속 은숙이 딱 그랬던 것처럼, 영화는 실제 자신이 갖고 있는 내용물에 비해 ‘뭔가 더 있어 보이려고 폼을 잡는’ 모습이다.

은숙이 장애로 다리를 전다는 설정, 한 템포 빨리 성행위 장면을 보여 주거나 돌연히 등장인물을 죽도록 만드는 낯선 타이밍, 연극적인 대사, 비현실적일 만큼 높은 은숙의 목소리 톤과 같은 요소들은 영화에 독특한 스타일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는 영화를 감독 자신만이 아는 크고 작은 상징들로 가득한 난해한 시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삶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낯선’ 방식은 홍상수 감독이 존재한 이래로 이젠 ‘익숙한’ 방식으로 규격화돼 버렸다.

불친절한 영화를 지적인 영화로 착각하는 것도 지식인의 또 다른 허위가 아닐까. 이하 감독의 장편 데뷔작. 18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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