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픽]“주어진 시간 1분… 스타는 기다리지 않는다”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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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니콜 키드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레미 아이언스, 가수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에미넘, 어셔, 얼리셔 키스…. 사진기자 김명중(33·사진) 씨의 카메라 렌즈 안에 들어온 쟁쟁한 스타들이다. 국제적인 이미지 제공회사 ‘게티이미지’ 영국 런던 지사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 기자인 그가 찍은 스타들의 모습은 세계의 신문과 잡지 등을 장식해 왔다. “런던은 미국 못지않게 월드 프리미어(영화 첫 시사회)나 대형 콘서트가 자주 열려 세계적 스타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이들 행사는 물론 칸과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 등 유럽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직접 취재를 가서 스타들을 만나죠.”》

게티이미지는 자료 사진을 빌려 주는 아카이브 기능과 더불어 100여 개 국가의 신문, 잡지, 영화, 광고 등에 최신 사진과 동영상을 제공하는 회사다. 본사는 미국 시애틀에 본사가 있으며, 런던 등 15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런던 지사에 스카우트된 김 씨는 보도 사진을 제공하는 에디토리얼 부서의 연예팀 수석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최근 업무 관계로 서울을 찾았다.

“같은 연예인을 찍더라도 보도 사진은 살아 있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지 스튜디오 사진처럼 만드는 사진이 아니죠. 그게 큰 매력이자 한계입니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비슷비슷한 사진은 영 마음에 차지 않았죠. 그래서 정석에 충실한 사진과 함께, 일부러 무거운 장비를 하나라도 더 챙겨 가 개인적 느낌이 있는 사진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어요. 게티 측이 그런 점을 평가해 준 것 같아요.”

칸 영화제의 경우 배우와 일대일로 찍을 때 사진기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분 이내. 남들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더 노력한 끝에 짧은 시간 안에 역동적이면서도 남다른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특히 흥미를 느끼는 것은 콘서트 사진을 찍을 때. 그는 “공연은 살아 있다”며 “생생한 현장의 열기와 예술적 조명이 어우러진, 나만의 사진이 나올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영국 런던 지사의 사진기자인 김명중 씨가 촬영한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 김 기자가 찍은 글로벌 스타들의 사진은 세계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고 있다.

그는 사진을 공부한 적이 없다. 서울 대일외국어고를 졸업한 뒤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갔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지, 인생의 뚜렷한 목표도 없지, 그래서 도피성 유학을 간 것”이란다. PD를 해 보면 어떨까 하고 필름과 비디오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 대로 재미를 느꼈다. 명문대인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입학 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맞아 집안이 기우는 바람에 결국 학업을 접어야만 했다.

“부모님 덕에 고생 모르고 철없이 살다가…. 식당에서 요리 보조나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죠. 손님이 접시에 남겨 놓은 음식을 먹으면서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처음 배웠습니다. 바닥을 쳤던 시간이 있기에 뭐든 겁 없이 도전할 수 있었어요.”

사진과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학교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갔다가 법원 사진을 취급하는 통신사의 견습생 모집 공고를 보고 카메라를 들게 된 것. 날마다 법원에 출근해 판검사, 피해자와 용의자의 사진을 찍었다. 1년 반 동안 ‘더 타임스’와 ‘가디언’ 등 유명 신문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사진들이 실렸다.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실력이 쌓이면서 2000년 ‘데일리 텔레그래프’로, 이어 영국 최대 통신사인 ‘프레스 어소시에이션(PA)’으로 옮겨 4년간 일했다.

“영어도 서툰 제가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학력 아닌 실력 중심의 사회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회사를 옮길 때마다 단 한 번도 ‘어느 학교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지금은 주어진 현장만 뛰는 ‘사진기자’지만 앞으론 패션과 광고 등의 사진을 두루 거쳐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사진을 찍는 ‘사진가’가 되고 싶은 게 바람이다. 지기 싫어하고, 뭐든 한번 시작한 일은 포기하지 않는 그라면, 꿈을 이룰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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