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사랑에 속고 사랑에 울고…‘퍼햅스 러브’

  • 입력 2005년 12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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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떨쳐버리고 싶은 여자(저우쉰)과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남자(진청우)의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다룬 영화 ‘퍼햅스 러브’. 사진 제공 오락실
과거를 떨쳐버리고 싶은 여자(저우쉰)과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남자(진청우)의 아픈 사랑과 이별을 다룬 영화 ‘퍼햅스 러브’. 사진 제공 오락실

가난한 여자와 가난한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한때 사랑에 희망을 걸었지만 여자에겐 가난이 숨 막힐 정도로 고통스럽다. 여자는 남자를 버리기로 한다. 유일한 자산인 몸을 무기로 자신을 스타로 키워 줄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결국 성공한다.

버림받은 남자도 여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영화배우가 된다. 두 사람은 같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톱스타로 재회한다. 사랑의 추억을 잃어 버린 그들은 이제 더는 가난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첨밀밀’의 천커신(陳可辛) 감독이 연출한 ‘퍼햅스 러브’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영화다. 극중극 형식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영화를 통해 무대와 무대 밖 현실의 모호한 경계에 놓인 세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직설화법이 아닌, 예술영화의 느낌으로 풀어 나간다.

영화에선 야망을 위해 사랑을 버리고 스타가 된 손나(저우쉰·周迅), 그녀를 성공으로 이끌어 준 영화감독 니웨(장쉐유·張學友), 여자에게 버림받고 복수를 꿈꾸는 지엔(진청우·金城武) 등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 위치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현실 속에서 사랑과 미움으로 얽힌 세 남녀는 뮤지컬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로 만나 삼각관계를 복기한다.

저우쉰과 진청우는 과거를 떨쳐 버리려는 여자와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남자로 등장해 팽팽한 긴장관계로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큰 화면을 가득 채우며 자주 클로즈업되는 두 사람의 얼굴은 사랑과 이별을 건너가는 안타까운 감정의 굴곡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잘 때는 이를 갈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당찬 성격의 손나. 눈앞에 현실화되는 꿈이 옛 남자 때문에 신기루처럼 사라질까 두려워하면서도 서서히 과거의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는 손나의 매력은 저우쉰으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밤마다 잠 못 이루는 지엔은 스러지는 사랑의 기억을 붙잡고 싶을 때마다 호텔의 수영장에 들어간다. 그가 물 속에서 흘리는 굵은 눈물방울, 손나와의 수중 키스, 자판을 두드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널 증오해’ ‘같이 떠나자’ 등의 문구는 사랑을 잃은 남자의 치유받기 힘든 아픔을 증폭시킨다.

‘사랑의 완성은 추억’ ‘아픔은 행복의 그림자’ 같은 영화 속 대사나 노래도 울림을 남긴다. 더불어 뮤지컬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화려한 춤과 노래는 단순한 덤이 아니라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데 중요한 몫을 해 낸다. 라스베이거스의 대형 쇼를 떠올리게 하는 쇼걸들, 우산을 들고 추는 거리의 군무와 정열적인 라틴 댄스, 서커스단의 곡예를 배경으로 삼은 뮤지컬 장면들은 약간 국적불명 같긴 하지만 할리우드를 뺨칠 만한 잠재력을 보여 준다. 특히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장쉐유는 질투심으로 괴로워하는 니웨 역을 맡아 ‘오페라의 유령’이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남자 주인공처럼 비장하면서도 격정적인 선율의 노래를 힘 있게 소화해 낸다.

뮤지컬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리의 서커스 장면은 세 남녀 사이에 얽힌 사랑의 결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클라이맥스로 인상적인 영상미를 보여 준다.

사랑을 주제로 한 감성 멜로임에도 세 남녀의 사랑으로 빚어지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가슴깊이 와 닿기엔 어딘지 모르게 밋밋하다. 뮤지컬 영화와 현실 속의 러브스토리가 너무 친절하게 포개지면서, 도돌이표 노래처럼 같은 이야기를 다시 보는 기분도 든다.

국내 관객들에겐 지진희가 출연한 영화로도 알려진 작품이다. 그는 세 남녀의 삶에 개입하는, 인상 깊은 조역인 천사 ‘몬티’ 역을 맡았다. 천사는 이런 내레이션을 한다.

‘인생은 영화와 같다/우린 모두 자기 삶의 주인공/다른 사람의 삶에도 출연하지만/그건 조연에 불과하다/단역이거나…/최악일 땐 편집 당할 수 있다’.

1월 5일 개봉. 12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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