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775년 英작가 오스틴 출생

  • 입력 2005년 12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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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청혼 방법이 내 대답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해예요. 그저 조금 더 신사적인 태도였다면 거절하면서 느꼈을지도 모를 미안함을 면제해 주었을 뿐이지요.”

청혼했던 남성은 ‘악’ 소리를 냈을 법하다. 딱지를 맞은 건 그렇다 치고 신사답지 못하다는 비난까지….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가난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가 대지주 다아시의 청혼을 거절하는 장면이다. 양가 규수들의 지상 과제가 ‘좋은 남성과 결혼하기’이던 시절이었다.

19세기 초기 활동했던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은 여성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주로 다뤘다.

그가 창조한 소설 속 공간은 좁다. 당시 유럽을 뒤흔들던 나폴레옹전쟁도, 영국의 산업혁명도 나오지 않는다. 시골 소읍에서 몇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사가 전부다. 하지만 매우 사실적이고 흥미진진하다.

평가는 엇갈린다.

프랭크 리비스는 영국 소설가의 계보를 적은 저서 ‘위대한 전통’을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는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그리고 조지프 콘래드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일부에선 뻔한 설정과 구도를 가진 단순한 로맨스 소설로 치부한다.

오스틴 자신은 소설가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다. 심지어 소설론에도 모조리 최상급 형용사만 사용했다.

‘소설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힘이 표현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완벽한 지식,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 재치와 유머의 가장 활력 있는 토로가 최고로 정제된 언어로 세상에 전달된다.’

하지만 현실에선 남성 중심 세계에 갇힌 여성일 뿐이었다. 속물스럽고 너절하고 비인간적인 세계…. 하지만 그 세계를 떠나선 생존할 수 없었다.

집필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문을 열 때 ‘삐걱’ 소리가 나게 해 누가 들어오기 전에 원고를 감출 수 있게 했다. 작품 대부분은 그가 사망한 후 빛을 봤다.

그는 세계에 대한 비판가인 동시에 희생자였다.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 태어나 1817년 7월 18일 세상을 떴다. 42세의 짧은 생애였다.

작품 속에서 모든 여주인공을 적당한 남편감과 결혼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끝내 미혼이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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