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학, 멈춤의 지혜’…버려야 얻고 멈춰야 나아간다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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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자만이 뜻을 이룬다. 당 태종 이세민(왼쪽)은 백성을 위해 성급한 혁신을 지양해 명군으로 추앙받았고 촉한의 제갈량(오른쪽)은 최고의 전략가로 명성을 떨쳤으나 전쟁을 멈추지 못해 결국 패자로 운명을 마감했다. 사진 제공 김영사
나아가야 할 때와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자만이 뜻을 이룬다. 당 태종 이세민(왼쪽)은 백성을 위해 성급한 혁신을 지양해 명군으로 추앙받았고 촉한의 제갈량(오른쪽)은 최고의 전략가로 명성을 떨쳤으나 전쟁을 멈추지 못해 결국 패자로 운명을 마감했다. 사진 제공 김영사
◇지학, 멈춤의 지혜/왕통(王通) 지음·마수취안(馬樹全) 편집·김호림 옮김/435쪽·1만2900원·김영사

지학(止學)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 멈춤의 철학을 설파하는 책이다. ‘빨리빨리’를 거스르는 ‘느림’의 철학은 많이 있었지만, 아예 멈춤이라…. 중국 고사를 인용한 처세 책이야 수두룩하지만 이 책을 비중 있게 고른 것은 ‘멈춤의 철학’이라는 신선함 때문이다.

기왕에 멈춤의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자 철학도 크게 보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무위(無爲), 다시 말해 멈춤의 철학이다. 이 책의 원저자인 수나라 때 유학자 왕통(王通)은 아예 이것을 하나의 학문으로 집대성했다.

왕통의 철학은 ‘삶에는 나아가는 일만 있는 게 아니고 잠시 멈추는 것도 있다’는 것. 그는 ‘나아감’과 ‘멈춤’의 상호 보완을 강조하면서 멈춤의 ‘지’(止)와 멈추지 않음의 ‘부지’(不止) 사이가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자 큰일을 이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라고 주장한다. ‘멈춤’은 패배나 퇴보, 일탈이 아닌 용기 있고 능동적인 사람만이 실현할 수 있는 철학이자 성공하는 인생을 살기 위한 필수 덕목이라는 것이다.

왕통은 20세 때 문제에게 ‘태평10책’이라는 개혁안을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분(河汾)이라는 곳에 은둔하며 ‘멈춤’의 철학을 집대성해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제자들은 당 태종 때 국가를 개혁하는 브레인 집단으로 활약한다.

중국 고전 전문가인 마수취안(馬樹全)은 이 왕통의 철학을 바탕으로 고사를 함께 엮어 삶의 갖가지 상황에서 멈춰야 할 때와 취해야 할 때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멈춤의 지혜는 달리 말하면 기다림이다.

신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군주를 원망하지 않고 참고 기다려 마침내 제(齊)나라를 세운 소도성(蕭道成), 19년간의 망명생활에도 방종이나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여 진(晉)나라의 군주가 된 중이(重耳), 자신의 영광보다 백성의 안위를 먼저 살펴 성급한 개혁조차 멈췄던 당 태종은 그런 점에서 위너(winner)들이다.

반대로, 왕의 장인으로 핵심 권력을 가졌지만 권세와 자신의 지략을 과신하며 부귀공명을 좇다 반대파에 살해된 양준(楊駿), 출중한 지략과 결단력 추진력을 고루 갖췄지만 (전쟁을) 멈출 줄 몰랐던 제갈량(諸葛亮)은 루저(loser)다.

멈춤의 지혜는 또 달리 말하면, 버림으로써 얻는 삶이다. 범려(范(라,려,리,여))는 왕을 보좌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었지만, 왕의 사람됨이 고난은 함께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귀거래한 뒤 농사를 짓는다. 베푸는 삶을 살았던 그는 머리도 좋고 세상만사 지식에 통달한 인재였지만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늘 자신이 바라고 선택한 대로 살다간 인물이니,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전국시대부터 청대에 이르는 중국 역사 속 인물들이 펼쳐 보이는 100가지 옛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해롭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이익일 수 있다’, ‘물건도 너무 정교하고 화려하면 쉽게 훼손되는 것처럼 말(言)도 마찬가지다’ ‘영예가 너무 크면 경계를 받고, 명성이 너무 높으면 질시를 받는다’ ‘명예를 구하다 얻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복이 되기도 한다’ 같은 역설의 경구들은 절도와 다스림에 대한 성찰을 던진다. 왕통의 팬이라는 홍콩의 대부호 리자청(李嘉誠)은 ‘멈춤을 안다’는 뜻의 ‘지지(知止)’라는 두 글자를 사무실의 눈에 확 띄는 곳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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