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디자이너]<1>히트 브랜드 메이커 손혜원 대표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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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소주 시장의 절대 강자 진로가 두산 ‘그린’의 도전에 고전하고 있을 때였다. 그린에 맞선 ‘순한 소주’가 무참하게 패배한 뒤 새로운 강타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 게 ‘참眞(진)이슬露(로)’다. 참眞이슬露는 소주의 명가 진로가 입은 상처를 단숨에 회복시켰을 뿐 아니라 빅히트 상품이 되었다. 당시 이 소주의 네이밍과 라벨 디자인을 한 주인공이 손혜원(47·크로스포인트 대표) 씨다. 베스띠벨리, 씨(SI), 보솜이, 참나무통맑은소주 등 네이밍으로도 인정받았던 아이덴티티 디자이너인 그는 참眞이슬露의 대히트에 이어 연속 안타로 히트 브랜드 메이커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브랜딩 디자인의 한 우물을 파다

손 대표는 대학 졸업 후 1977년 현대양행(현 한라그룹) 기획실에서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84년 ‘디자인 포커스’라는 디자인 전문회사에서 당시 한국에 막 정착하던 기업 이미지통합(CI)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6년 ‘크로스포인트’라는 아이덴티티 디자인 전문회사의 창립 멤버로 나섰으며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가 전면에 부각된 1990년대 명성을 날린다.

1990년대 한국 디자인계는 큰 변화를 겪는다. 기업 이미지통합의 열기가 식고 브랜드 이미지통합(BI)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기업보다 매장에서 만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사실을 말한다. 삼성의 지펠이나 LG의 휘센처럼 전문 브랜드가 생겨난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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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변화는 대형 할인점의 등장과 함께 모든 브랜드들이 한 장소에서 경쟁하게 된 점이다. 월마트의 조사에 따르면 하나의 할인매장에는 10만 개가 넘는 브랜드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 상품은 바로 옆에 있는 경쟁 상품보다 자신을 집어달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매장의 변화가 브랜드 디자인, 특히 패키지로 표현되는 브랜드 디자인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처럼 브랜드 경쟁이 치열한 상황 속에서 디자인이 브랜드의 무기가 된 시대 환경은 브랜딩이라는 한 우물을 파 온 손 대표에게 기회였다. 그리고 그는 ‘식물나라’ ‘참眞이슬露’를 비롯해 태평양의 ‘이니스프리’ 등 잇따른 성공으로 실력을 입증했다. 2001년에는 참眞이슬露의 경쟁사인 두산에서 브랜드 ‘산’의 네이밍과 디자인을 해서 참眞이슬露에 밀렸던 두산 소주의 부진을 만회시켜 주기도 했다.

드럼세탁기 시장이 커지는 것에 근거해 단독 브랜드 전략을 세워 탄생한 ‘트롬’과 공기청정기를 생산하는 기업의 이미지에 맞게 리뉴얼한 ‘청풍무구’도 성공적인 프로젝트다.

히트 브랜드 메이커로 불리는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는 상품의 본질을 찾아내야 한다는게 그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철학이다.

○ 본질을 찾아라

그는 성공의 비결이 감각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이 아니라 브랜드의 명확한 본질을 찾는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를 찾아 오는 고객들은 대부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달라는 것보다 시대에 맞게 기존 브랜드를 새롭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리뉴얼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완전히 새로운 변신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변신으로 브랜드가 원래 갖고 있던 본질적 가치가 사라진다면 오히려 소비자에게서 외면당하기 쉽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본질에 충실할 때 변화가 가치를 낳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손 대표는 리뉴얼을 할 때도 브랜드의 본질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독특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여도 부가가치를 낳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질에 다가갈 것인가. 마케팅 공부를 하고 수십 쪽짜리 보고서를 만드는 일보다 중요한 게 있다.

그는 “그 비결은 바로 디자이너가 회사의 직원보다 해당 브랜드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품이 놓인 판매대를 찾아가고 라벨에 적힌 여러 요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소비자들이 왜 사는지 정성을 다해 조사한 뒤 애정을 갖고 디자인하라는 것이다.

손 대표는 “브랜드가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현장에 가봐야 디자인에 설득력이 생기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고 말한다. 드럼세탁기용 세제인 비트드럼의 리뉴얼이 이러한 사례다. 기존 제품이 드럼세탁기 전용 고급 세제이면서도 그런 본질적 가치를 드러내지 못했던 것에 반해 패키지 형태와 색상, 몇 가지 요소를 바꿔 매출을 크게 향상시킨 것이다.

○ 디자인은 소비자가 평가한다

지난해 그는 30여 년간 디자인에 바친 열정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 두유인 ‘콩豆’ 브랜딩으로 홍콩디자인센터가 주최하는 아시아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것. 심사위원들은 이 제품이 한국산이지만 동아시아인 누구라도 보자마자 콩 음료 제품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려 주는 설득력을 지녔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손 대표는 이 상으로 인해 디자이너의 역량을 평가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득하지 못하는 굿 디자인은 박물관에 걸어야 한다”라는 그의 도발적인 말이 시사하듯 디자인 평가는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소비자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아름답고 멋지게 꾸미는 것으로만 디자인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세련되고 아름답게 설득하는 힘’이라는 디자인의 본질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브랜드 경쟁에서 승률을 높이는 전략가임을 입증했다. 그는 매일 전투가 벌어지는 브랜드 시장 전반에 대한 디자이너인 셈이다.

글=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kshin@design.co.kr

사진 제공=디자인하우스

●손혜원 대표는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6년 ‘크로스포인트’의 창립 멤버였다가 1990년 이 회사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종가집김치, 뷰티크레딧, 태평양 라네즈 걸, 비트드럼, 콩두, 청풍무구, 트롬, 산, 이니스프리, 참眞이슬露 등 여러 브랜드를 제작했다.

▼손혜원 대표의 히트작▼

◇ 뷰티크레딧(2004년)=소망화장품의 전문 브랜드숍 ‘뷰티크레딧’의 아이덴티티와 제품 패키지 디자인.

◇ CJ 비트드럼(2004년)=드럼 세탁기 전용 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브랜드 이름 ‘비트’보다 드럼을 더 강조하고, 패키지도 드럼세탁기 형태처럼 바꾸었다.

◇ 한미 ‘콩豆’(2003년)=콩 모양의 병 디자인으로 100% 콩으로 만들었음을 강조했다.

◇ 청풍무구(2003년)=공기청정기 부문에서 선두를 지켜온 기업 이미지를 살려 순진무구함을 청풍과 결합시켰다. 우리말로도 국제화에 걸맞은 네이밍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트롬(2001년)=드럼세탁기 시장이 커졌다는 판단으로 ‘벨라지오’라는 브랜드 군에서 독립시킨 단독 브랜드로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 산(2001년)=언어를 통한 브랜드 이름으로는 참진이슬로를 극복하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기존 제품인 그린의 속성을 ‘山’이라는 그림으로 구체화시켰다.

◇ 참眞이슬露(1998)=‘진로’라는 기업 이름에 이미지의 본질이 내재됐음을 간파해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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