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박수룡]신도시 개발, 조형계획부터 세워야

  • 입력 2005년 9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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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촌을 볼 때가 그렇다. 저 아파트 숲만 없다면 산도 보이고 하늘도 보일 텐데,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수도권이나 대도시뿐만 아니다. 지방의 작은 마을에도 이처럼 흉물스러운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다. 경치 좋은 산자락이나 논 한가운데 볼품없이 서 있는 아파트가 너무 많다. 도시도 부족해서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까지 그런 아파트가 들어서야 하는지 참으로 가슴이 답답하다. 개발 바람을 타고 어느 순간 빼앗겨 버린 우리의 조망권을 이제는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에 일어난 ‘바우하우스 운동’이 생각난다. 당시 독일에서는 시골에서 도시로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많은 주거 공간이 필요했다. 건축물은 최소한의 생활여건만 갖춘 채 대량으로 조잡하게 지어졌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더는 수준 낮은 건축물이 지어져서는 안 된다며 바우하우스라는 디자인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 학교를 중심으로 디자인과 조형을 중시하는 예술 건축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운 수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디자이너들이 맨 앞에 서서 아름다운 독일 건설을 이끈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그런 예술 건축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닭장 같은 천편일률적인 건축물, 직선 일변도의 삭막한 빌딩, 하늘을 가리는 회색 공룡 대신 색깔이 있고 자신만의 성격을 갖춘 조형적(造形的)인 건축물이 많이 들어서야 한다.

몇 해 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길에 기둥 두 개로 지탱하는 아주 독특한 빌딩을 본 일이 있다. 그 건물을 보면서 우리나라라면 과연 그런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도 허가 및 설계 과정에서부터 관련 공무원과 수없이 싸움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정부는 얼마 전 송파구 거여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강북을 중심으로 뉴타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도시, 혁신도시 등 각종 도시건설 계획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각종 도시개발 계획 속에 도시 전체의 조형미를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지역 문화와 특성을 살린 조형계획을 먼저 세우고 그 다음에 설계 작업을 했으면 한다. 한 곳에 원형아파트, 다른 곳엔 저층 빌라, 중앙에 고층아파트 하는 식으로 지침을 주어 건물 하나하나의 조형과 주변 환경이 어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살려내야 한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결국 선이다.

흉물스러운 건축물로 전국의 산하가 상처투성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희망이 있다. 서울에도 그런 곳이 남아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직 자갈을 볼 수 있는 강과 뜨고 지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다리가 있다. 해가 서서히 내려앉을 때 강바닥에서 태양빛을 토해 내는 모래톱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크고 작은 산이 있고 사시사철 흐르는 물이 있다. 좀 더 나은 조형미와 계획성을 갖춰 도시의 미관을 죽이지 않는 개발을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

건축주 입주자 공무원 모두 이제 건축물을 보는 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단순한 기능 차원을 넘어 미(美)를 중요한 요소로 감안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건물의 재산가치도 위치나 평수만이 아니라 환경과 문화요소를 고려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박수룡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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