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이승욱/‘두 악기’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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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부는 아프다

그래서 고모도 더 아프다

대청마루 위에 불거져 나온

물기어린 뼈와 뼈

찬연했던 한때의 연주

숙연히 끝내고, 찾았던

관중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돌아설 때 가장 슬픈 소리를 내는

두 악기를 닮아간다

귀를 씻어도 금세 넘쳐나는 밀물처럼

두 악기 소리 내 귓바퀴 속에 지칠 때

고개 들어 저 빈 들에도 가득

소리 없는 가을 음악

내 슬픔을 끌고 가는

맨드라미 신음의 몸빛이

터질 듯 붉다!

- 시집 ‘지나가는 슬픔’(세계사) 중에서》

조카님, 객지서 먹고 사니라 바쁠 텐디도 못난 우리들 보겄다구 바리바리 싸들고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네. 나야 뭐 고모부 병 수발 핑계루 입성도 갖춰 입지 못하고, 늘상 젖은 복사뼈 불끈 나온 맨발일세. 아파도 아픈 사람 거두느라 아플 새도 없으니 그도 내 복 아니겄나? 허허, 말이 보밸세. 아픈 우리 두 내외가 악기를 닮았다구? 하긴 다 진 저물녘이래두 몸서리치도록 연주하고픈 게 있기는 있지. 석양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 저 황금노을 좀 보게. 삶이야 제 아무리 슬퍼도 ‘지나가는 슬픔’이라고. 고통도 찬란하기야 연주하기 나름이라고.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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