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원재]‘겨울소나타’ 덕보는 현대쏘나타

  • 입력 2005년 9월 12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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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일본에서 더 유명해진 강원 춘천시 남이섬. 세련된 디자인의 은빛 승용차가 호젓한 시골길을 기분 좋게 달린다. 남이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용사마’ 배용준 씨의 감미로운 음성이 흘러나온다.

“당신과 함께, 난 쏘나타…. 나의 새로운 쏘나타와 함께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이달 초부터 일본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현대자동차 CF의 한 장면이다. 교포들이 반가웠던 건 한류 스타가 한국 기업 제품의 모델로 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60대 교포는 “우리말 CF를 보면서 ‘일본 속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일본 소비자를 겨냥한 CF지만 일본어는 자막으로만 처리됐다.

현대차가 5세대 쏘나타(2400cc) 3개 모델의 일본 판매를 10일 시작하면서 썰렁하기만 했던 현대차의 일본 대리점이 분주해졌다. ‘용사마 CF’ 덕택이다.

‘겨울연가’의 일본판 제목은 ‘겨울 소나타(冬のソナタ)’. 현지 언론은 한류 열풍의 근원이 된 드라마 제목과 자동차 브랜드가 같은 데 따른 연상 효과가 한류 팬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할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한 딜러는 “쏘나타 모델이 전시장에 도착하지 않았던 7월에 예약 주문이 들어온 걸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일본 열도가 선거 화제에 파묻힌 지난 주말에도 ‘아줌마 팬’들은 삼삼오오 현대차 대리점을 찾아 용사마의 대형 브로마이드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쏘나타 모델을 살펴봤다.

현대차의 일본 시장 진출은 넘보기 어려운 비원(悲願)의 대상이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성공한 여세를 몰아 2001년 일본 시장을 두드렸지만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세계적인 품질의 자국 차에 익숙한 일본 소비자들은 이웃 나라의 메이커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현대차가 지난해 일본에서 판매한 차는 고작 2524대. 올해는 7월까지 1300여 대를 파는 데 그쳤다. 세계 시장에서 380만 대를 팔아 5위권 진입을 눈앞에 둔 현대차로서는 내놓기 민망한 실적이다.

현대차 저팬은 쏘나타의 연간 판매 목표를 2500대로 잡고 있다. 지난해 팔려 나간 쏘나타가 230만 대인 점을 감안하면 보잘것없지만 현대차 측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6일 도쿄(東京)의 한 호텔에서 딜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쏘나타 발표회’에서 김재일(金在日) 현대차 해외영업본부장은 “소비자들의 안목이 까다로운 일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며 “마지막 남은 선진국 시장인 일본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2년만 일찍 용사마 효과에 주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가전업체 소니는 비디오카메라의 광고 모델로 용사마를 기용해 반년 넘게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주부들은 소니 브랜드보다는 ‘용사마 카메라’만을 찾았다. 롯데도 배 씨와 최지우 씨를 껌 광고 모델로 등장시켜 톡톡히 재미를 봤다.

현대차로서는 일본 공략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쏘나타와 용사마의 결합’을 회심의 카드로 꺼냈다. 결과를 예단하긴 이르지만 일본 소비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 한류 스타는 배용준-최지우-보아로 대표되는 1세대에 이어 이병헌-권상우-김래원-소지섭-비 등이 각광을 받으면서 저변이 한층 넓어졌다.

한류 스타와 한국 기업을 잇는 마케팅은 해외 시장 개척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할 만하다.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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