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인문사회]‘102분’ &‘생존’

  • 입력 2005년 9월 10일 03시 00분


◇102분/짐 드와이어, 케빈 플린 지음·홍은택 옮김/404쪽·1만4500원·동아일보사

◇생존/로렌스 곤잘레스 지음·정지인 옮김/384쪽·1만4000원·예담

“그들은 지하 150m 갱도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 150m에서 세상과 단절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비행기가 충돌한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274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 항공기 탑승객과 소방 구조대원을 빼면 약 1500명은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는 무사했으나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건물 붕괴까지 북쪽 타워에서는 102분, 남쪽 타워에서는 57분의 시간이 있었는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는가?

뉴욕타임스 기자인 짐 드와이어와 9·11테러 당시 경찰출입 기자를 했던 케빈 플린은 구조대원 및 생존자와의 인터뷰, 수천 쪽에 달하는 구술 기록, 전화, e메일, 긴급 무전 필사본 등을 짜맞춰 끔찍한 재난의 순간을 되살려냈다. 희생자 126명을 포함한 당시 주인공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102분’간의 사투는 마치 나 자신이 잿더미와 시신이 비처럼 쏟아지는 세계무역센터 안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해준다.

“89개 층을 뛰어 내려갈 것인가, 20개 층을 올라갈 것인가?”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내려가라’, ‘올라가라’는 경찰 및 소방 관계자의 혼란스러운 지시 속에서 자기 본능에 따라 움직여야만 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책에는 비행기 충돌 지점 부근 12개 층을 오가며 쇠 지렛대를 이용해 닫힌 문을 열고 수십 명을 구조한 사람, 장애인 친구 옆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운명을 같이한 사람, 26kg이나 되는 소방장비를 착용하고 78층까지 계단을 뛰어올랐던 구조대원 등 감동적인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보다 세계 최대 도시 뉴욕의 재난 대처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파고든다.

항공기로 빌딩에 돌진하는 테러는 알 카에다의 범행 훨씬 이전부터 우려됐던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타워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항공기가 북쪽 타워로 돌진하는 그림을 뉴욕 타임스에 광고로 실었다. 그러나 9·11테러가 나기 8개월 전 항만청 건설담당 매니저 프랭크 드 마티니는 히스토리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타워는 연료를 가득 채운 707기가 건물에 충돌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이 빌딩은 세로 줄무늬로 엮은 원형 기둥이 창문에 쳐놓은 모기장과 같아서 비행기가 여러 번 들이받더라도 견뎌낼 수 있다. 비행기는 모기장을 뚫고 들어오려는 연필에 불과하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무역센터는 102분 만에 남쪽, 북쪽 타워 모두 무너져 내렸다. 또한 무너지기 전에도 대피할 피난 계단이 전부 유실돼 충돌 지점 위층에 1000여 명이 고립돼버렸다. 이것은 1968년 부동산 개발업자의 로비로 건물안전수칙이 개정됐기 때문.

경찰국과 소방국의 지휘체계 혼선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뉴욕 항만청 경찰국과 소방국은 무전기의 주파수가 달라 교신할 수도 없었다. 경찰 헬기는 오전 8시 52분부터 비행기 공격을 받은 위쪽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지만, 소방 지휘본부 대대장은 수백 m 상공의 화재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건물이 무너진다”는 긴급 정보는 경찰만 알고 있었으며, 소방지휘본부와는 통신이 안 돼 파편이 날리는 현장에서 사람이 직접 뛰어가야 했다. 원제 ‘102minutes’.

한편 ‘생존’은 9·11테러 같은 극한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이 살아남는지에 관한 ‘법칙’을 탐구한다. 저자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성과 본능이 어떻게 치명적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설명해준다. 원제 ‘Deep Survival’.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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